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4. 제로니모와 나바호의 천리 길 (5)
보스톤코리아  2016-05-16, 11:45:48 
제로니모의 1차 산 카를로스 주거지역 탈출 (계속)
1879년 4월 크룩이 플래트 사령관으로 있던 시절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경험했다. 퐁카 족(Ponca) 추장인 서있는 곰(Standing Bear)과의 재판에서 스탠딩 베어는 “인디언의 피부 색깔은 백인의 그것과 다르다. 그러나 그 손을 찌르게 되면 아픔을 느끼게 되고 백인의 피와 꼭 같은 색깔의 피가 나온다. 신이 인디언도 만들었다. 인디언도 사람이다.”라고 진술했다. 재판을 맡았던 판사도 ‘인디언도 사람’이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겪은 뒤로 크룩은 180도 달라진 사람으로 변화했다.

크룩은 꼬투리를 잡을만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1883년 3월 아파치 소 추장들이 툼스톤(Tombstone) 근처의 한 광산을 습격했다. 이를 빌미로 크룩은 병력을 동원하여 멕시코로 넘어갈 준비를 하였으나 치리카우아족의 은거지를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  5월에 제로니모가 멕시코의 한 농장을 습격한 후 멕시코 군을 따돌리고 은거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크룩부대가 은거지를 점거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포로로 잡아두고 있었다. 제로니모는 여러 차례 크룩과 회담을 가진 끝에 크룩을 믿고 산 카를로스 인디언 주거지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5월 말에 약 400명의 아파치 인디언을 데리고 크룩은 인디언 주거지역으로 출발했다. 제로니모는 나머지 인디언들을 다 불러 모아서 뒤에 따로 들어가겠다고 크룩에게 약속했다. 1884년 2월 제로니모는 크룩에게 약속한대로 주거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1 년 정도는 큰 탈 없이 주거지역 생활이 계속되었다.

제로니모의 2차 산 카를로스 주거지역 탈출
그런데 1885년 5월 제로니모는 130여명의 부족민을 이끌고 다시 주거지역을 탈출했다. 탈출 이유로 여러 가지 억측이 돌았지만 훗날 발간된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자신을 체포하여 목을 매달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에 주거지역에서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크룩은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로니모를 잡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은 펴지 않고 소규모 인디언 용병을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용병 중에는 코치스의 아들 알치스(Alchise)도 있었다. 1886년 3월 크룩은 아파치 추장들과 멕시코 국경 너머에서 만나서 그들이 하산하여 주거지역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하였다. 크룩은 솔직하게 제로니모 무리들은 포로가 되어 플로리다로 이송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제로니모는 2년만 플로리다에 억류돼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투항하겠다고 답했다. 크룩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반응은 크룩의 희망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조건으로는 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제로니모 일행이 보위 요새(Fort Bowie)까지 거의 다 왔다가 다시 멕시코로 되돌아 가버렸다. 한 백인 상인이 제로니모 일행이 투항하면 미군들이 그들의 목을 매달 게 뻔한 일이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듣고 그렇지 않아도 배신을 두려워하던 차에 그만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어버렸던 것이다. 제로니모의 세 번째 도주가 발생한 셈이다. 워싱턴의 전쟁부는 크룩을 크게 질책했다. 크룩은 즉시 사직하고 후임으로 북부 평원 인디언들을 성공적으로 토벌한 마일스 장군(Nelson Appleton Miles)이 부임했다.

제로니모의 네 번째 체포
마일스는 전쟁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불과 25명의 아파치 인디언을 잡기 위하여 당시 미군의 가용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00명을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600명의 인디언 용병 정찰요원(scout)과 민병대원 수천 명도 함께 작전에 투입했다. 미군과 멕시코 군에 계속 쫓기다가 결국 제로니모 무리도 포위당했다. 그들을 처음 찾아낸 사람은 용병부대의 책임자인 게이트우드(Charles Bare Gatewood) 중위와 아파치 수색병들이었다. 게이트우드가 이끈 병력은 모두 25명이었으나 마지막으로 제로니모를 만나러 갈 때에는 제로니모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단지 6명만을 데리고 갔다. 훗날 마일스는 이를 트집 잡아 명령을 위반했다고 하면서 그의 공적을 깎아내렸다. 

게이트우드는 아파치 말도 조금 할 줄 알았고 아파치 인디언들에게 착한 미군으로 잘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다. 게이트우드는 심성이 온유한 사람이라 제로니모에게 예의바른 태도로 온화하게 이런저런 사정들을 들려주었다. 제로니모도 마음을 열고 속내를 다 털어 놓고 마지막으로 게이트우드에게 솔직한 충고를 구했다. 게이트우드는 플로리다로 유배는 가더라도 죽이지는 않을 터이니까 투항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제로니모는 1886년 9월 4일 애리조나의 스켈리턴 캐년(Skeleton Canyon)에서 마일스에게 공식적으로 투항했다. 그리하여 제로니모는 네 번째로 백인들에게 붙잡힘으로써 기나긴 아파치족의 피비린내 나는 저항은 막을 내렸다. 투산 시민들은 제로니모의 체포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고 게이트우드 중위를 특별 손님으로 초청하였으나 그는 가지 아니 하였다. 마일스는 크룩의 인디언 전략을 폄하하기 위해서 게이트우드의 역할을 깎아내리려고 애썼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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