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다시 읽는 조침문弔針文
보스톤코리아  2015-07-06, 12:02:12 
흙내음이 훅하니 끼쳤다.  굵은 빗방울이 내리쳐서  덮힌 흙를 들쑤셔 놓았던 거다. 흙냄새는 콧속을  깊게 파고 들었다. 얼마만에 맡는 흙내음인가. 쏟아진 여름비 덕분에 눅진하던 기운도 사라졌다. 말라가던 잔디도 푸른 기운을 되찾았다. 보스톤에 여름이 닥쳤다.
냉탕온탕을 오고가는 여름, 건강하신지.

  법정스님이 그의 책 무소유에서 말했을 게다. 스님은 난蘭을 키웠고 난을 무척 아꼈던 모양이다. 하지만 스님은 난을 사랑한게 아니었고, 오히려 집착이었던 걸 깨달았단다. 남에게 난을 입양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긴 스님은 김치를 시지 말라고 냇가에 담궈뒀는데, 장마통 불은 물에 떠나 보내기도 했단다.  김치 없이 맨밥을 드시며 마음이 무지 짠하더라 했다. 김치 없이 먹는 밥은 밥이 밥같지는 않았을 게다. 그런데, 무소유와 무집착의 법정스님도 문방구 만큼은 또다른 애착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다른 수필집에서 스님은 문방구점을 그냥 스치지 못한다 했다. 스님의 솔직한 모습이 오히려 친근하다. 필기구만 보면 욕심이 생긴다 했으니 말이다. 

  옛 선비에게는 문방사우文房四友란 게 있었다.  먹과 붓과, 벼루와 종이를 일컫는다. 종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고, 붓은 죽장거사竹杖居士이다. 먹은 묵묵선사默默禪師라 했고, 벼루는 흑각선생黑角先生이 별명이라더라. 선비는 문방사우와 더불어 놀고 즐겼다는 거다.  한편, 규방 아낙은 바느질과 친했다 했다. 규방칠우閨房七友 라 했고, 친구는 바늘과 골무와 가위와 자와 실 따위인 게다. 바느질에 필요한 소품들이다. 그렇다고 바느질이 뭐그리 즐길만 했겠는가. 할 수 없으니 했던 게지. 오래전에 배웠던 조침문弔針文이다. 바늘은 규방칠우 중 하나인데, 몇 주 전 반갑게 다시 읽었다. 기억이 새로웠고, 읽으면서 감탄했더랬다. 동화마냥 아기자기하고 읽을수록 간지럽다. 마음 한구석 짠한 느낌도 누를 수 없었다. 첫 대목이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한참 손때 묻은 것들을 잃어 버리면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하다. 사소한 물건이나마, 정든 것 이라면 더하다. 예전에는 만년필이든 라이터든 뭐 그런 것들이었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지 않으면 심한 불안증에 시달린다.  모든 정보를 이 작은 물건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요사이에는 왜 이다지도 챙겨야 할게 많은지. 지갑에, 자동차 키에, 스마트폰이다. 아참, 돋보기 안경도 챙겨야 하니, 내 주머니가 모자란다. 아예 큰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할 판이다. 언제 이 지참물과 집착에서 벗어나 빈손과 빈몸으로 다닐 것인가. 

   예전엔 바늘도 중국제를 수입해다 썼던 모양이다. 국산은 잘 부러졌던가? 글쎄. 예나 지금이나 뭐든 메이드 인 차이나를 쓸 수 밖에 없는가. 스마트폰도 중국에서 만든다 했으니 말이다. 남자들은 스마트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아낙들은 무엇에 몰두하시는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0:2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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