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부엌을 만든 남자>, 요도야 죠안
보스톤코리아  2012-10-10, 14:51:19 
요도야 죠안은 우리나라로 치면 정주영이다. 그가 사업초기에는 건설업자로서 이름을 떨쳤기 때문이다. 죠안은 본래 산성국(山城國)의 오카모도(岡元)장원 출신이다.
산성국이라면 요즘의 이세(伊勢)지방이다. 이세는 오사카의 남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다.본래 그는 목재상이었다.

어느 날 요도가와(淀川)하천 공사의 제방 축조를 맡은 것이 그가 목재상에서 건설업자로 탈바꿈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요도가와는 교토로 이어지는 강이자 운하였는데,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홍수가 나서 범람했다. 이 요도가와에 제방을 쌓은 것이 요도야 죠안이 오사까의 대상인으로 가는 발판이 된 것이다.
요도가와 제방 공사 이전에 그를 처음으로 발탁한 사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서기 1594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카 히데쓰기에게 호주 자리를 물려주고 교토의 남부에 있는 후시미에 은거하려 했다. 이 당시 후시미에는 성이 없었으므로 후시미 성을 짓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후시미 성을 신축하려던 자리 앞에는 엄청난 바위가 놓여 있어서 그 바위를 제거하지 않고는 공사를 할 수 없었다. 당시 그 바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청업자들이 모였다. 토목 담당 관리가 그 바위를 제거하기 위한 하청업자 선발 회의를 주재했다. 업자들은 높이 7미터, 폭이 14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바위 앞에서 망연자실했다.이때, 요도야 죠안만이 공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공사 발주 금액은 금 500관(금 1875킬로그램)이었다. 요도야 죠안이 제시한 금액은 그 십분의 일인 50관이었다. 토목 담당 관리는 이에 놀라 그에게 정말로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후시미 성의 신축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최대 관심사였으므로 기일 내에 끝나지 않으면 토목 담당 관리도 매우 곤란한 입장에 빠질 상황이었다. 죠안은 호언장담했다. 토목 담당 관리와 여타의 하청업자들은 도대체 죠안이 어떤 방법으로 그 커다란 바위를 제거할 것인지 매우 궁금해 했다.

당시 죠안가 시도한 공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선 그는 바위 밑에 커다란 구덩이를 팠다. 문제의 바위가 들어갈만한 구덩이였다. 그리고 그 구덩이 위에 질긴 소나무 기둥을 여러개 걸쳤다. 구덩이가 완전히 파지자, 수백명의 인부가 큰 바위에 밧줄을 걸어 바위를 구덩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바위가 조금씩 구덩이를 향해 움직일 때마다 질긴 소나무 기둥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마지막 소나무 기둥이 제거되자 마지막으로 바위를 구덩이에 밀어넣었다. 큰 바위는 구덩이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바위가 구덩이 속에 들어가자 드디어 거기에 흙을 덮었다. 바위는 땅속으로 들어가 온데간데 없게 되었다.
이처럼 공사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요도야 죠안이 의외로 쉽게 큰 바위 덩어리를 제거해 버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때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요도야 죠안이라는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요도야 죠안에게 두 번째로 맡겨진 일이 바로 요도가와의 제방쌓기였다. 앞서 말했듯이, 요도가와는 지금도 오사카 시내를 관통하는 큰 강이다.

해마다 강둑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는 바람에 여름철이면 오사카 시내가 물바다가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요도가와의 제방은 늘 골칫덩어리였다. 해마다 응급처치로 요도가와의 둑을 보강했지만 큰 물이 한 번 지고 나면 제방은 씻기운 듯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제방 공사를 맡은 요도야 죠안의 제방 공사 공법은 이번에도 역시 간단했다. 그가 토요토미 막부에 요청한 것은 쌀을 가득 담은 가마니였다. 그는 그 쌀을 가득 담은 가마니로 우선 제방을 쌓았다. 그리고는 돌을 가득 담은 가마니를 가져오면 그만큼의 쌀 섬과 바꾸어 주겠다는 공고를 냈다. 공고가 나자마자 오사카 시내는 난리가 났다.

돌과 쌀을 같은 양으로 바꿔준다니 오사카 주민들은 너도나도 쌀가마니에 돌을 가득 채워 요도가와로 갔던 것이다. 요도야 죠안은 돌 가마니를 가져온 주민들에게 그 자리에서 쌀 섬과 바꿔주었다.
즉, 쌀 섬이 있던 자리에 돌 가마니를 그대로 채웠던 것이다. 주민들은 신이 나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돌가마니를 날라왔다.

공사는 단시일내로, 쉽게 끝났다. 쌀과 돌을 일대일로 바꿨으니 막대한 공사비가 들었지만 홍수 때문에 오사카 시내가 입는 피해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이것이 대상인 요도야 죠안의 지혜였다.
죠안은 한 마디로 역발상의 귀재였다. 그의 공법은 한 때 한국의 정주영이 서해안 시화호의 물막이 공사 때 25만톤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제방둑을 쌓았던 기발한 공법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시화호 물막이 공사는 쏟아져 나오는 물의 압력이 워낙 커서 수백트럭의 돌을 바닷물에 쏟아부었지만 번번히 허사였다.

이런 난해한 공사를 정주영은 25만톤의 고철 덩어리 유조선을 가라앉혀 한 방에 끝내버렸다.이처럼 요도야 죠안 역시 기발한 역발상으로 후시미 성의 바위를 제거했고, 요도가와의 제방을 단번에 복구했던 것이다. 그의 역발상은 단순히 현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판도를 읽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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