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봄눈
보스톤코리아  2021-03-15, 13:32:51 
봄과 눈雪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봄은 꽃이라 해야 할진대, 눈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정지용 시인은 춘설(봄눈)이라 했다. 이른 봄에 때를 놓친 눈일 게다. 첫 절만 읽는데, 절창이다. 시를 얼마나 읽었으랴만, 이 구절에선 나역시 꺼뻑했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느낌표 역시 선뜻과 함께 돌연스럽다. 참, 우수절은 雨水節이라 써야 할게다. 봄눈이 아닌 春雪이어야 하듯 말이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
(정지용, 춘설중에서)

설화雪花. 아내가 마켓에서 사온 쌀이름 이다. 상표이름이 한껏 그윽한데, 게다가 분홍색봉지이다. 상표 글자 역시 볼만하다. 눈꽃이라는 뜻이고 이역시 雪花라 써도 그럴듯 하다. 설화는 매화의 다른 이름이다. 

어디 쌀과 화장품뿐이랴. 눈꽃 설화는 술 상표이며,  여자 이름도 있다. 부르기에 입에 닿는데, 이마에 차갑기 커녕 오히려 감미롭다. 

한국 화장품중엔 설화수雪花秀란게 있단다. 화장품을 쓸일 없는 나한테도 이름은 아름답다. 이 화장품 에서도 분명 향기가 날 게다. 꽃 향기일테니 설향雪香이라 해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봄눈이 내렸다. 2월 말인데, 눈이 내린거다. 보스톤에서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지용의 춘설을 읽을 적엔 오히려 정겹다. 얼핏 맞은 눈에 내 이마 역시 차가웠는데, 소스라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눈은 없겠지. 봄눈을 보기 위해선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보스톤에도 꽃피는 계절이 곧 찾아 올게다. 봄엔 눈꽃은 아닌데, 목련꽃도 바람에 휘날리면 눈처럼 보인다. 
눈꽃은 절경이다만 향기는 없다. 우리집 마당엔 아직도 잔설殘雪이 남았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시편 147:1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일본 우익과 전범기업 대변자 램지어 망언 규탄 2021.03.15
미주 전 지역은 아직도 COVID-19의 심각한 폐해가 지속되는 가운데 백악관은 지난 2월 22일 성조기 반기를 5일간 게양해 현재 50여 만명 이상에 이르는 미..
하버드에서 울려퍼진 "아리랑" 2021.03.15
2021년 3월 6일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위치한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대 존스턴 게이트(Johnston Gate) 앞에서 100여 명이 넘는..
한담객설閑談客說: 봄눈 2021.03.15
봄과 눈雪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봄은 꽃이라 해야 할진대, 눈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정지용 시인은 춘설(봄눈)이라 했다. 이른 봄에 때를 놓친 눈일 게다...
바이든, 30년만의 증세 추진 시동 2021.03.15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법인세와 소득세 등 증세 추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기부양..
핀테크 업체 스트라이프 "회사 가치 100조원대로 평가돼" 2021.03.15
핀테크 기반의 전자지급 결제대행(PG) 업체인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가 불과 1년 사이에 거의 3배 수준인 950억달러(약 108조원)로 평가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