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64 ] 나는 부르주와다
보스톤코리아  2019-06-10, 10:44:08 
한국 땅에서 정치만큼 핫한 주제도 없다. 잘못 건드리면 관계가 틀어지기가 일쑤이고 심하면 돌팔매를 맞을 수도 있다. 종북이니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용어들이 정치적 딱지로 횡행한다. 부정적 의미로 전락한 정치용어들을 사용하는 데 여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도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 번역되는 politically correct (pc)라는 용어가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면 racist란 말은 함부로 써서도 안 되지만 일단 사용하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정적에게 이 말을 쓰면 당사자나 사용자 중 한명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하다. 

‘부르주와’ 역시 정치학 용어이다. 마르크스-레닌 식의 공산주의에서는 타도의 대상이자 프롤레타리아 즉 무산자 계층의 원수이다. 의미는 언제나 변한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단어는 새로운 의미로 제 역할을 한다. deer는 동물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의미가 축소되어 ‘사슴’이란 특정한 동물만을 가리킨다. game은 ‘사냥감’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게임’이란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된다. 또 cool은 ‘시원하다’란 의미도 있지만 ‘멋지다, 좋다’란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된다. 

부르주와는 bourgeois라 쓴다. bourgeois는 말 그대로 bourg(도시, 타운)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고, 그런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말할 때 bourgeoisie란 복수형을 쓴다. 이 단어가 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는 정치학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필자는 언어학자로서 이 단어의 어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bourgeois와 짝을 이루는 proletariat(무산자)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어는 로마시대에 재산이 없어 세금도 못 내고 국가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는 오로지 자식(proles)을 많이 낳아 노동력을 증대시키는 것밖에 없는 계층이란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니까 재산이 없다는 뜻의 ‘무산자(無産者)’라기보다 아이를 낳는 기계라는 의미의 ‘해산자(解産者)’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bourg-는 고대프랑스어인 burgeis에서 왔다. burg-가 town을 뜻하니까 말 그대로 옮기면 town dweller이다. 읍내에  사는 사람들이 중산층이니까 차츰 ‘중산층’이란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도시에 산다. 그러니 필자도 bourgeois임에 틀림없다.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중산층은 아니듯, 필자도 중산층은 아니지만, 도시에 사는 것만은 틀림없으니 bourgeois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burg-는 주로 언덕진 곳에 성곽이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burg-를 포함하는 지명은 대부분 성곽이 있는 도시들이다. 영국의 Edinburgh, 독일의 Hamburg, 오스트리아의 Salzburg, 프랑스의 Cherbourg나 Strasbourg가 다 이렇게 생겨난 도시들이다.

산업화가 되면서 성곽도시가 퇴락하고 상업도시 즉 city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과 자본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한 곳에 몰리기 시작했고 거기에 새로운 도시가 생긴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 즉 city dweller를 citizen이라 한다. bourgeois보다 그 수가 훨씬 많고 따라서 영향력도 훨씬 더 강력하다. 프랑스어 cite와 Parisien(파리 거주자)에서 보듯 행위자를 나타내는 어미 -ien, -ien이 결합한 것이었는데 오늘날 철자가 citizen으로 굳어졌다. 일부 재치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자주 출몰하는 사람을 가리켜 netizen이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성곽도시나 상업도시가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물론 ‘마을’에 살았다. 라틴어로 집은 villa이고,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은 village이다. village에 사는 사람들은 villager라 부른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빌라’는 로마시대와는 많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고급빌라도 있고 연립주택도 있다. villa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villager인지, bourgeois인지, citizen인지 알 길이 없다. 

필자의 지인 중에 Marc Bourgeois란 사람이 있다. 그는 city에 살고 있고 미국 citizenship을 가지고 있으니까 citizen이다. 그는 village도 한 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니까 bourgeois이다. 그러니까 그는 bourgeois Bourgeois인 셈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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