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8 |
화랑세기花郞世紀, 10세 풍월주風月主 미생랑美生郞(1) |
보스톤코리아 2018-10-22, 11:13:03 |
미생은 550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진부이고 어머니는 묘도부인이다. 미실이 누이이다. 미실은 당시 진흥왕부터 그의 아들들인 동륜태자와 진지왕, 손자 진평왕까지 3대에 걸쳐 색공과 색도를 통하여 새주, 전주, 좌후 등의 지위로 왕비에 못지않는 권력을 누렸다. 미생의 아버지 미진부는 2세 풍월주를 지냈다.240) 미진부는 ‘남모와 준정의 사건’ 으로 원화가 폐지되고, 지소태후의 명으로 화랑도가 탄생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남모가 부인이었다. 남모와 준정은 서로가 원화의 우두머리가 되어 더 많은 원화를 차지하려고 투기를 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술로 유혹하여 강에서 죽였다. 남모공주는 법흥왕의 딸이었으며 어머니는 백제의 보과공주로 뛰어난 미인이라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남모는 어려서 부터 미진부와 함께 궁중에서 살면서 서로 사랑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불행하게도 준정에게 살해되었다. 갑자기 아내를 잃은 미진부는 외조부이자 장인인 법흥왕을 모시는데만 전념하면서 아픈 마음을 달래며 지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장인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와 사통을 하게되었다. 감히 말을 못하고 지내다가 마침내 허락을 받아서 묘도를 아내로 맞아 미실과 미생을 낳았다. 미생은 550년에 태어났으며, 진흥왕이 즉위한지 11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560년대 초, 미실이 세종과 결혼하여 입궁한 뒤, 곧이어 진흥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미생은 매일같이 입궁하여 궁궐에서 동륜태자와 금륜 등 왕자들과 놀면서 토함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많은 공주들과 함께 학문과 무예를 배웠다. 또한 어려서 부터 만덕萬德에게서 춤을 배운 미생은 춤을 잘 추었으며, 뭇 사내아이들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얼굴에 아양을 잘 부려 왕자들은 물론 또래의 공주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진흥왕의 비 사도왕후가 모든 공주들에게 ‘춤의 대가’ 인 미생으로 부터 춤을 배우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공주들과 어려서 부터 춤을 추며 어울리게 되었고 또한 사사로이 정을 통하여 진흥왕의 노여움까지 사기도 했다. 그래서 진노한 진흥왕이 문초하려고 하자 사도왕후가 “이는 우리 집의 풍류접風流蝶241) 입니다. 어찌 모름지기 문초를 하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선처를 건의하자, 진흥왕은 특별히 그를 용서하였다. 아마도 왕이 미생의 누이인 미실에게 빠져 있었기에 미실의 ‘베개밑송사’도 있었으리라…. 당시 미실은 진흥왕의 이부동복 아우인 세종의 부인이었고, 왕후 사도를 이모로 두고 있었다. 즉 묘도와 사도는 자매지간이다. 미생은 10살을 갓 넘긴 아주 어릴적부터 색한이었다. 나중에는 자녀들이 100여명이 되었는데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도 다 알지 못했다고 한다. 미실은 미생에게 사다함을 따르게하여 드디어 화랑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12살의 나이라서 말에 오를 수가 없었다. 아버지 미진부가 쫓아내려 하자, 미실이 반대하였고, 당시 풍월주 사다함은 어쩔수 없이 받아드렸다. 문노는 “말에도 오를 수 없고 검도 사용 못한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라고 탄식하였다.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 전에 연인사이였고, 문노는 세종은 존경하였지만 미실은 좋아하지 않았다. 240) 미진부는 비보랑의 아버지인 비대공과 함께 궁중에서 친구처럼 자랐다. 비대는 법흥왕의 아들이고(어머니는 옥진), 미진부는 법흥왕의 외손자이다(법흥왕과 벽화부인 –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록된 여인, 사이에서 삼엽궁주가 태어났는데, 그가 아시공과 결혼하여 미진부를 낳았다). 241) 이종욱(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 152면) 은 “풍류접을 미실과 미생의 집안이 대원신통으로 왕의 혼인 상대를 배출하는 유풍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로 생각한다” 고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의를 보면 “속되지 않고 운치있는 일이나 ‘음악’을 일컫는 말” 로 되어있다. 이 풍류란 말은 ‘화랑세기’ 를 제외하고는 ‘삼국사기’ 의 진흥왕조에 설치한 화랑제도에 관한 기사記史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문’ 을 인용한데서 나온다.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가 합쳐져서 된 풍류라는 말은 단순한 바람과 물흐름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운치가 있는 일’ 로 풀이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아취雅趣가 있는 것’ 또는 ‘속俗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 하는 학자도 있다. 풍류를 풍속의 흐름으로 보아 문화와 같은 뜻으로 보는 이도 있고, 풍월風月과 같은 뜻으로 보아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시가詩歌와 관련 짓기도 한다. 또한 풍류를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의 고유사상인 ‘부루’의 한자표기라는 주장도 있다. 부루란 불, 밝, 환, 하늘을 가르키는 말로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하느님 신앙에서 나온 개념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 즐기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그리고 여유와 자유분방함 등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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