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7 |
화랑세기花郞世紀, 9세 풍월주風月主 비보랑秘寶郞(8) |
보스톤코리아 2018-10-15, 12:24:32 |
이어지는 화랑세기, [건복建福20년238) 8월 고구려가 침범하여 왔다. 제帝가 친히 정벌했는데, 낭도들이 많이 따랐다. 공과 세호랑이 선봉이 될 것을 청하여 한수漢水에서 맞아 싸워 크게 이겼다. 제가 공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공이 말하기를 "신은 어리석고 겁이 많아 한 일이 없습니다. 곧 제帝의 힘으로 이룬 것입니다" 했다. 제는 이에 세호랑을 발탁하여 아찬239) 의 관위를 주고 대당大幢을 장악하도록 했다. 공이 말하기를 "오늘에야 비로소 나의 아들이다. 또한 너의 어머니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했다. 대개 세진은 공에게서 검을 배워 세호랑을 가르치면 말했다. "처는 지아비의 일을 알지 않으면 안 되고, 아들은 아버지의 업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말했기 때문이다. 공은 죽을 때까지 검도를 버리지 않았다. 문하에서 나온 무리 중에 출세한 사람이 많아 사방으로 나아가 다스렸는데, 공은 늘 정사에 삼가 할 것을 경계했다. 공이 죽자 모인 자가 만여 명이 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다! 공의 별전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이 많은데 거짓된 것이 많아 다 기록하지는 않았다. 찬하여 말한다: 법흥의 손자이고 진흥왕의 사위이다. 위位가 상선上仙에 이르렀고 검도劍道로 크게 떨쳤다. 무사의 기풍이 일어났고 백세의 스승이다. 세계世系: 아버지는 비대 각간인데 법흥왕의 서자이다. 비대각간의 어머니는 옥진궁주이다. 옥진이 영실공에게 시집갔다. 당시 법흥왕이 친히 길례吉禮를 행했는데, 그 아름다움을 보고 …하여 총애가 더욱 두터워졌고, 비대각간을 낳았다.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 …로서 전군의 지위를 막고자 했다. 비대공이 자라자 … 헐뜯는 자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했다. 비대공은 미진부공의 친 손아래 누이인 실보낭주를 부처副妻로 삼아 공을 낳았다. 실보는 곧 삼엽공주의 딸이다. 삼엽은 벽화황후의 딸이고, 아버지는 곧 법흥대제이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비보랑의 기록은 비교적 간략하다. 하지만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할 당시에도 이미 그에 관한 기록물들이 많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러가지 거짓된 것(황탄荒誕)들이 많아서 다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한것은 김대문은 믿을 수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보랑에 관하여 기록 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악기와 노래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지만, 문노의 수제자로 검도에는 문노 다음으로 신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인仁과 의義를 솔선하여 낭도들을 지휘했으며, 전쟁에 나아가서는 지용智勇으로 무퇴하며 백전백승하였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나날이 늘어났고 그의 장례에는 일만 여명이 모여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의 아버지 비대공은 법흥왕의 아들이다. 비대의 어머니는 옥진궁주이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의 딸이다. 그리고 옥진은 박영실에게로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 결혼식에 법흥왕이 친히 참석하였다. 왕족인 신하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만 해줬으면 좋으련만 신부 옥진의 미모에 빠진 법흥왕은 그만 옥진을 자신의 후궁으로 대려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비대전군이다. 왕비 보도부인으로 부터 적자 아들이 없었던 법흥왕은 서자인 비대를 차기 왕으로 책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먼저 옥진의 아버지 위화랑이 반대하였다. 또 법흥왕의 정비 소생인 딸 지소도 반대하였다. 벽화로 부터 태어난 서녀인 삼엽공주도 반대하였고, 충신 아시공 등 모두가 비대의 신분을 문제삼아 반대하였다. 그래서 비대는 왕좌에 오르지 못했고, 차기 왕좌는 지소의 남편인 입종에게로 가는듯 했다. 입종은 법흥왕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입종은 단명하였다. 20대 중후반에 죽은 것으로 보여진다. 법흥왕은 과부가 된 딸 지소를 박영실과 혼인시켰다. 아마도 자신이 후궁으로 삼은 박영실의 부인 옥진에 대한 빚이라도 갚듯, 법흥왕은 딸 지소를 박영실에게 혼인시켜서 박영실을 차기 왕으로 잇고자 생각도 했다. 그런데 부왕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했지만 지소는 박영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소는 왕비보다는 태후의 길을 선택했다. 결국 7세의 아들 삼맥종(진흥왕의 휘)을 왕좌에 올리면서 대리청정으로 실권을 손안에 넣었다. 238) 건복建福 20년은 서기 603년이다. 건복은 제26대 진평왕 6년부터 제27대 선덕여왕 3년까지 사용한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이다. 584년2월에서 633년까지 50여년간 사용하였다. 이전에는 진흥왕 33년(572년) 부터 사용해오던 홍제鴻濟였고, 선덕여왕 3년에 인평仁平으로 개원改元하였다. 239) 신라의 17관등(경위京位) 중에서 아찬은 6등급이다. 아찬부터 최고위 관료들은 자색紫色 관복을 입었다. 신라의 관등은 1등급 부터 다음과 같다. 이벌찬, 이찬, 잡찬, 파진찬, 대아찬, 아찬, 일길찬, 사찬, 급찬, 대나마, 나마, 대사, 사지, 길사, 대오, 소오, 조위로 되어 있었다. 6두품은 6등급 아찬 까지만 진급이 허용되었고, 5두품은 10등급인 대나마 까지만, 4두품은 12등급인 대사 까지만 진급이 허용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나무위키,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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