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3 |
화랑세기花郞世紀, 9세 풍월주風月主 비보랑秘寶郞(4) |
보스톤코리아 2018-09-17, 10:42:31 |
삼국사기(진평왕 본기 9년)에 생뚱맞게 등장하는 ‘대세와 구칠’, 그들이 신라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삼국사기만으로는 도무지 줄거리의 중요성이 납득이 잘 가지도 않고, 또한 무엇 때문에 김부식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도 아니고 사건의 내용마저 대단하지도 않는데 왜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함께 읽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대세, 대세는 비보랑과 이종사촌간이다. 대세의 어머니 골보骨寶는 비보랑의 어머니 실보낭주의 동생이다. 실보와 골보는 삼엽공주의 딸들이고, 법흥왕의 외손녀들이다. 대세는 ‘하늘이 재린 재주’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과 같이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선神仙을 배우려 하였고, 스스로 모랑과 완적阮籍에 비교했다. 완적은 죽림칠현235) 의 한 사람이다. 대세도 죽림칠현들과 같이 술을 좋아하였다. 다만 죽림칠현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술을 마시고 심지어 친구의 상가집에 가서도 고기를 먹고 웃옷을 벗어가며 춤을 즐겼는데, 대세는 술만 먹으면 울고 행동이 거칠고 많은 유화들을 탐했다. 동시에 그렇게 행동하는 그를 사모하는 유화들이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는 유화들뿐만 아니라 비보랑의 정처인 덕명공주와도 사통하였다(덕명공주는 진흥왕과 가야국의 월화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풍월주 비보랑은 대세를 용서하였고, 그의 타고난 천재天才를 가상히 여겨 전방대화랑으로 삼고자 하였다. 하지만 부제 미생랑을 비롯한 그의 일파가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 보다 조금 지위가 낮은 좌방화랑으로 삼고, 또다시 우방화랑으로 삼아서 장차 중용할 것임을 말하면서 술을 멀리하고 수신과 인격도야에 힘쓰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대세는 비보랑의 관용에 감동하여 매사에 처신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후 풍월주의 자리가 미생랑에게로 넘어가면서 비보랑은 미생에게 대세를 부탁하였다. 미생은 대세를 전방대화랑에 임명하였다. 그런데 대세는 미생을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그가 풍월주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복종하지 않았다. 동시에 미생의 첩의 동생인 제문랑諸文郞이 전방대화랑 자리를 원했기에, 미생은 대세가 유화들을 탐하고 과음에 거친행동荒亂을 한다는 책임을 물어 파직하였다. 그 당시 상선의 지위에 있던 비보랑이 의기소침한 대세를 위로하고 사문沙門 담수로 하여금 보살피게 했다. 이에 심기일전한 대세는 수양에 힘쓰고 신선의 도을 터득하고자 발분하였다. 그리고 대세는 공부를 더하기 위하여 같은 화랑인 구칠과 함께 바다를 건너서 서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신라에 돌아오질 않았다. 대세와 구칠이 표면적으로는 ‘신선의 도’ 를 터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화랑도 조직내부에 불만을 품고 홀연히 사라졌기에, 상선 비보랑을 따르던 화랑들이 동요하였고 불안해 했다. 마침내 대세의 떠남으로 인하여 화랑은 당파가 다섯으로 나뉘어졌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대세의 떠남’만 기록하고, 그로 인한 화랑도 내부의 분파는 기록하지 않았다. 먼저 통합원류파統合元流派, 통합원류파는 문노의 최정예들인 임종, 대세, 수일 등이 이끌며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여 국력을 강하게 하려는 무리徒들이었다. 이들은 하종을 재주가 없다고 혹평하였고 미생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생은 미실의 동생으로 그 당시 화랑도의 풍월주였다. 다음은 대원신통파大元神統派, 대원신통파는 미실을 따르는 일파들인 하종, 구륜공 등이 중심이 된 대원신통의 무리들이었다. 구륜공은 진흥왕과 정비 사도왕후의 삼남이다. 개에게 물려서 죽은 동륜태자와 제25대 진지왕의 동생이다. 세 번째로는 진골정통파眞骨正統派, 진골정통파는 문노의 일파들이지만 보리랑, 숙리부 등이 중심이 되어 지소태후의 명령을 받들었기에 가장 권력이 있었으며 옛 규범를 어김없이 따르는 진골정통의 무리들이었다. 보리공은 이화랑과 숙명공주의 아들이며,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증조부이다. 네 번째는 이화류파二花流派, 이화류파의 무리들은 좀 복잡하다. 문노는 세종을 따르고 충성을 했기에 그의 아들 하종과 다투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 소위 문노정파文弩正派와 위에서 언급한 통합원류파 중에서 혼성된 무리들이다. 이들은 정숙태자를 풍월주로 세우고 원광을 부제로 삼으려고 했다. 정숙태자는 진흥왕과 숙명궁주의 아들이다. 진흥왕(입종과 지소의 아들)과 숙명궁주(이사부와 지소의 딸)는 이부동복 남매이다. 원광은 보리공의 형이며 ‘화랑도의 세속5계’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가야파加耶派, 가야파는 범 통합파이지만 천주공을 풍월주로 세우고, 서현랑을 부제로 삼으려고 한 무리들이었다. 천주공은 진흥왕과 월화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비보랑의 부인인 명덕공주와 남매지간이다. 서현랑은 김유신의 아버지이다. 235)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위진남북조 당시 조씨의 나라 위魏에서 사마씨의 나라 진晉으로 넘어가는 어지러운 시절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고 청담을 주고 받으며 세월을 보낸 완적阮籍, 혜강, 산도山濤, 상수,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7인을 말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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