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89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8)
보스톤코리아  2017-08-07, 11:26:09 
동륜태자가 부왕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마폭을 풀려고 월담하다가 ‘개사건’이 일어나 ‘개죽음’을 당한 후 왕은 사건의 진상를 밝히고자 대대적인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중의 하나로 미실의 방탕한 색사가 들어났고 동륜과도 사통 한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미실의 전주와 원화의 지위를 폐하고 출궁시켰다. 미실의 두번째 출궁, 그녀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왕궁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왕은 경외京外에서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고 있던 미실의 남편 세종을 입궐하라고 명령하였다. 다시 그를 풍월주로 삼았다. 이어지는 화랑세기(필사본),

[다시 세종을 풍월주로 삼았다. 미실은 이에 세종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원화전주를 물러났으며, 그대와 함께 조용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데 그대는 어찌 다시 풍월주가 되려 하는지요. 빨리 설원랑에게 물려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했다. 세종은 이에 설원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전하여 주었다. 그 때 금태자金太子 또한 미실과 서로 사귀어 정을 맺는 것을 좋아하여 설원, 미생 등과 방외우方外友가 되었다. 미실이 비록 이미 출궁하여 깨끗하게 살 것을 공언했으나 가만히 있지 않고 금태자와 더불어 후사를 약속했다. 진흥제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제할 수 없어 미실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다.]

왕명을 받아 왕성으로 돌아온 세종은 다시 풍월주의 지위에 올라 화랑도를 이끌었다. 그런데 방탕한 사통으로 인하여 출궁당한 미실은 남편 세종의 풍월주 재취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그 직을 사양하고 자신과 함께 조용히 살자고 강권하였다. 그래서 다음 풍월주의 자리는 설원랑에게로 이어졌다. 설원랑은 사다함의 이부동모의 동생이다.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이 구리지(사다함의 아버지)가 독산성전투에서 전사하고 나서 구리지의 용양신이었던 설성을 남편으로 맞이하였다. 설성과 금진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설원이다. 나중에 풍월주가 되어서는 설화랑으로 불리었다. 이 설화랑에 관하여서는 다음 7세 풍월주 <설화랑>편에서 자세하게 볼 것이다.

출궁하여 조신操身하고 청조淸操하게 살겠다고 다짐한 미실이었지만 타고난 색기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그녀의 옆에서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금륜태자209) 도 있었다. 그는 신분을 파탈하고 설원과 미생 등과 어울리면서 많은 유화들과 유희를 즐기다가 미실에게도 접근하였다. 결국 그들은 후사를 약속하면서 통정을하였다. 그들의 ‘후사약속’ 이란 다름아닌 왕과 왕후의 자리였다. 진흥왕이 죽자 왕후 사도는 왕위를 장손인 동륜태자의 아들 김백정에게로 잇지 않고 둘째아들 김금륜을 등극시켰다. 그리고 미실을 왕후로 들인다는 거래가 있었다. 사도의 입장에서는 같은 조카딸이었지만 지도부인(진지왕의 왕후) 보다는 미실을 더 아끼며 서로 결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지왕은 끝내 미실을 왕후로 책봉하지 않았다. 결국 사도와 미실 일파는 세종과 노리부 등을 내세워 왕후로 책봉하지 않은 것과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며  방탕하게 여색에만 빠져 황음무도했다고 폐위하였다. 진지왕의 정사가 혼미하고 문란했던 대표적인 일례가 삼국유사의 ‘도화녀와의 사랑이야기’ 이다. 사실 제25대 진지왕의 치적은 거의 없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즉위년(576년 8월) 부터 다음해까지 조금 친정을 하였고, 577년 부터 579년 까지는 상대등 거칠부가 대리청정을 하였다. 그리고 친모 사도태후가 정변을 일으켜 폐위 때까지는 상대등 노리부가 대리청정을 하였다. 그리고 폐위된지 1개월 후 훙서(왕이나 귀인의 죽음)하였다. 화랑세기에는 유궁에 3년간 유폐된 것으로 나오며 삼국유사의 도화녀와의 사랑이야기를 보면 3년간의 유폐가 더 정확할 개연성이 있다. 그는 만3년 간의 치세에서 별로 한 일이 없다.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577년). 남조의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외교관계을 이었다(578년). 그리고 백제와는 계속 대결양상을 이어갔다.” 등이다. 치세가 별로 없는 진지왕대에서도 화랑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577년(재위 2년 10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입했을 때 왕은 세종을 필두로 군사/화랑도를 파병하여 일선군 북쪽에서 백제군 3천7백여명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내리서성을 쌓았다.    

209) 진흥왕의 맏아들 동륜태자가 게에게 물려 죽고나서 둘째아들 금륜金輪이 태자가 되었다. 그가 제25대 진지왕이다. 삼국사기(진지왕 즉위조)에는 사륜舍輪으로 나오고, 혹은 금륜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삼국유사(왕력편)에도 사륜이 먼저 나오고 일작 금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금륜(金)으로만 나오고 사륜으로 기록된 흔적이 없다. 이렇듯 그의 이름은 금륜이 더 타당한것 같은데, 후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참고자료가 된 화랑세기의 금金자의 획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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