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63 |
보스톤코리아 2017-01-30, 14:33:24 |
이어지는 김대문의 화랑세기, [개국開國11년(561년) … 양화공주兩花公主가 죽었다. 왕위를 이은 임금인 도설지道設智가 야녀野女로서 … 월광月光과 더불어 영토를 다투어 야인을 많이 거느리고 왔다. 제帝가 태종공에게 명하여 진압하도록 했다. 사다함이 선봉이 될 것을 청했다. 제帝는 사다함이 어리기에 허락하지 않았다. 사다함은 이에 사사로이 그 낭도를 거느리고 몰래 갔다. 금진이 설성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무품無品인데 여러차례 나라의 은혜를 입었다. 이 때에 나의 아이를 지켜주지 않으면 나의 남편이 아니다” 했다. 설성이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이다” 했다. 이에 사다함 휘하에 나아갔다. 야인을 대파하니 제帝가 훌륭하게 여겼다. 이에 사다함을 귀당비장貴幢裨將으로 삼았다. 그 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정병精兵 5천을 거느리고 전단문으로 달려 들어가 백기를 세웠다. 가야加耶…. 그 성을 …하고 도설지와 야녀를 포로로 했다. …군이 계속하여 이르러 가야군을 대파했다. 구九…. 공功으로 전田을 내려주자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포로로 한 생구生口는 모두 풀어주어 양인良人으로 만들었다. 진흥대왕은 더욱 중하게 여겼다. 알천의 땅을 주자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고 불모지 수백 경頃을 택하여 …을 받으며 말하기를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족히 근면하게 할 수 있다. …일이 없으면 입농入農하는 것이 나의 무리들 …이다” 했다.] - (이종욱 역주해) 또한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에 나오는 가야 정벌에 관한 기록도 함께 인용한다.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異斯夫에게 가라국{加羅國: 가라加羅 또는 가야加耶로도 쓴다}를 습격케 했다. 이때 사다함은 나이 15~6세였는데, 군대를 따라갔다. 왕은 사다함이 어리다 해서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여러 번 진심으로 청하고 뜻이 확고하였으므로 마침내 명을 내려 귀당비장을 삼았는데, 그의 낭도 중에 따르는 자 또한 많았다. 그 나라 경계에 이르자 원수元帥에게 말해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전단량{성문 이름이다. 가라 말로 문門을 양梁이라 한다}으로 들어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뜻밖에 군사가 쳐들어옴을 보고 놀라 막지 못하므로, 대군이 여세를 몰아 드디어 그 나라를 멸했다. 군사가 돌아오자, 왕은 공을 가려 가라 사람 300명을 주었다. 하지만 사다함은 이를 받아 다 풀어 주고 한 사람도 남겨 놓지 않았다. 또 전지田地를 내렸으나 받지 않으려 했다. 왕이 억지로 권하므로 알천閼川 일대 쓸모없는 땅을 달라고 할 따름이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사다함 열전 중에서 앞 부분의 그의 가계와 뒤이어 나오는 그의 죽음에 관한 부분을 뺀 가야 정벌 부분의 전문이다. 양화공주는 신라의 공주이다. 선혜부인(소지왕의 정비)과 호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법흥왕의 명에 의해 대가야의 이뇌왕과 혼인하였다. 그리고 대가야의 태자인 월광과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 월화궁주(진흥왕의 후비) 등을 낳았다. 즉 위의 화랑세기의 내용은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가 태자 월광을 앞세워 많은 야인189) 들을 거느리고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진흥왕은 이사부에게 명하여 대가야를 진압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화랑의 표상인 사다함의 진면모가 들어난다. 화랑도의 세속오계190) 중 가장 으뜸인 사군이충事君以忠(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어야 한다)의 정신으로 어린나이였지만 대가야 진압에 출정을 요청하였다. 화랑세기에는 진흥왕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몰래 자신의 낭도들을 거느리고 출정했으며, 삼국사기에서는 여러번의 간청 끝에 허락을 받아서 출정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전쟁 중 사다함의 활약상 역시 세속오계의 임전무퇴臨戰無退(싸움에 나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정신으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선봉에 서서 승리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전공戰功으로 받은 300명의 가야인(生口)들은 다 풀어주었고, 또한 많은 전지田地는 부하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는 살생유택殺生有擇(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과 교우이신交友以信(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또한 사다함은 효자의 표상이었다. 어머니 금진이 색녀로서 상당히 문란하였지만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심은 사친이효事親以孝(효로써 부모를 섬기어야 한다)의 가르침에서 나왔을 것이다. 특히 그의 죽음을 보면 교우이신交友以信의 정신을 넘어 한 번 한 약속을 죽음까지 함께하는 사우死友였다. 사다함은 벗이자 부하낭도인 무관랑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면서 애통해 하다가 7일만에 죽었다. 화랑도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요절하였다. 189) 야녀野女와 야인野人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종욱은 왜와 관계가 있는 집단으로 추측했다.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가야의 지배세력은 가야에 거주하는 야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였다. 190) 세속오계는 후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의 요청으로 준 수신계修身戒이다. 이 때 원광이 “… 지금 세속오계가 있으니…” 하면서 그들에게 주었으니 화랑의 세속오계는 이미 진흥왕 시대에도 있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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