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7. 대평원 전쟁의 서막 (3) |
보스톤코리아 2015-10-26, 12:03:46 |
로키 산맥을 넘는 옛길들 (계속) 이상의 옛길들은 모두 로키 산맥을 넘을 때에 사우스패스(South Pass)를 통과하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고개 중에 문경새재 옛길이 가장 편리하여 많이 이용되었던 것처럼 사우스패스가 대륙분수령 중 가장 완만한 고갯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미주리 주의 인디펜던스(Independence)에서 미국 남서부지역의 뉴멕시코 산타페까지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옛길 산타페 트레일(Santa Fe Trail)이 있었다. 이 길도 1880년 이 지역으로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됨으로써 그 기능이 사라졌다. 옛길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오늘날 DHL과 같은 특급우편제도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가 1860년 4월에 도입되었다. 모험적인 선구적 사업가들이 말과 기수를 계속적으로 바꾸어 달리게 함으로써 보통우편의 경우 20일 이상이 걸리는 동서 우편수송시간을 열흘로 단축시켰다. 루트는 오버랜드 트레일, 몰몬 트레일과 캘리포니아 트레일을 따라 갔는데 동쪽 끝은 미주리 주 센트 조셉(St. Josheph)이었으며 서쪽 끝은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Sacramento)이었다. 우편 배달 트레일의 총길이는 약 3100km이었으며 중간에 184개의 역(이 중 157개는 말과 기수를 바꿀 수 있는 역)이 있었고 기수 한 사람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120km를 달렸다고 한다. 1860년 11월 선거에서 링컨대통령이 당선된 소식을 7일 17시간 만에 전달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를 특급우편 홍보에 크게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61년 10월에 대륙횡단 전신망이 연결됨에 따라 포니 익스프레스의 유용성이 크게 떨어져 서비스를 중단하였다. 40년 대평원전쟁의 서막 미시시피 강 서쪽에서부터 로키 산맥에 이르는 드넓은 평원에서는 1854년 8월 19일 발생한 그래턴(Gratan) 중위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1890년 12월 29일 벌어진 운디드니 대학살 사건에 이르기까지 거의 4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서부의 땅을 개척해서 정착하려는 백인들과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인디언간에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었다. 이렇게 긴 세월에 걸친 전쟁으로 인하여 양측은 각각 2만 명 정도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디언이라는 말을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전투, 잔인하기 그지없는 대학살, 전설적 인디언 영웅의 탄생, 인디언의 완전한 패망 등이 이 시절에 일어났었고,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가 만들어져 대중들에게 인디언에 관한 얘기를 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 평원 전쟁이 여태까지 있었던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 벌어졌던 인디언 전쟁과 크게 다른 점은 평원 인디언들이 운송이나 수렵은 물론이고 전투에서도 말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총과 화약이 부족하여 활과 화살을 주 무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동력 면에서는 오히려 미군을 능가하였기 때문에 주변 지리에 밝은 이점을 활용하여 게릴라 전법을 효과적으로 펼쳐서 백인에 대하여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북미 대륙에는 원래 말이 없었는데 스페인군이 멕시코로 들여온 말들이 1680년에 있었던 ‘푸에블로 반란(pueblo revolt)’으로 인하여 스페인군이 떠나게 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야생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평원의 풍부한 풀들은 말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을 제공하였으므로 말들의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고 인디언들이 이러한 야생마를 잡아 길들여서 활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40년 대평원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자. 1851년 체결된 라라미 조약(Treaty of Laramie)으로 그 동안 백인과 인디언 간에는 큰 충돌 없이 평화가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1854년 8월에 한 젊은 미군이 쏜 총 한 발로 평화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1854년 여름 약 4000명의 브룰레 수우족이 라라미 요새 주위에 모여 티피 촌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정부가 인디언에게 지급하기로 돼 있는 물자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서 인디언들은 굶주림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에 8월 17일 몰몬교 이주자들이 수많은 소떼를 몰고 인근의 오리건 트레일을 지나고 있었다. 소 떼 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멀리 뒤쳐져 가고 있었는데 이 소를 높은 이마(High Forehead)라는 이름을 가진 미니콘주지파(Miniconjou) 인디언이 잡아다가 도살하였다. 그는 당시 손님 자격으로 브룰레 지파의 마을을 방문 중에 있었다. 라라미요새의 선임 장교인 플레밍(Hugh Fleming) 중위는 문제해결을 위하여 브룰레족의 추장 정복하는 곰(Conquoring Bear)을 만나서 범인을 잡아 요새로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디언 추장은 손님으로 와 있는 다른 지파의 인디언에 대하여는 그렇게 할 권한도 없을 뿐더러 예의상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대신에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말을 몇 마리 주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 죽은 소의 주인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현금으로 당시 돈 25달러를 꼭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19일 플레밍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하고 라라미 요새로 부임하여 그 전에 인디언과 접촉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그래턴(John Lawrence Grattan) 소위에게 인디언 캠프로 가서 범인을 체포해서 요새로 끌고 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래턴 소위는 지시받은 대로 29명의 병사와 어거스트(Lucienne Auguste)라는 이름의 프랑스계 인디언 혼혈인 통역과 함께 인디언 캠프로 가서 추장을 만났다. 그런데 통역을 맡았던 그 혼혈인은 수우 족 말도 서툴렀는데다가 미리 겁을 잔뜩 먹고는 가는 도중 계속 술을 들이켰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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