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동네 도서관 |
보스톤코리아 2015-10-12, 12:47:25 |
한국 중앙지 칼럼에서 읽었다. ‘노인이 한 명이 돌아 간다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과 같다.’ 켭켭히 쌓인 노인들의 지혜를 말하는 거다. 말이 과장되었다고 읽히지 않는다. 노인은 속도는 느리지만, 용량은 무지 큰 컴퓨터가 아니던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게 얼마일 것인가? 배우고 익힌 것이 얼마나 깊고 넓어 도서관 하나와 비교할 수 있으랴. 보스톤 도서관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그렇다고 사치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화이불치華而不侈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참 잘지었다. 보스톤 주변 지역 도서관은 크기는 작아도 모두 그렇지 싶다. 미국에 처음 와서 놀랬던 것 중 하나였다. 읍내마다 시내마다 도서관은 어디나 중앙통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한데, 도시 전체와 사뭇 잘 어우러지는 거다. 미국인들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교회를 짓고, 공회당을 세웠으며, 도서관을 먼저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렉싱톤 읍내에도 갖출 건 다 갖췄다. 우체국은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시청은 그저 그렇다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하지만 몇 년전 새로 지은 도서관은 예술작품이다.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다. 그닥 크지는 않지만 책을 빌리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찾아가 사진을 찍고 싶은 분위기인 게다. 고풍스러움과 도서관이 주는 진중한 모습이 조화롭다고나 할까? 이 도서관에선 여전히 종이책이 우세하다. 설사 종이 책이 점점 사라진다 해도, 렉싱톤 도서관 책은 여전히 남아 있을 듯 싶은 거다. 방대한 도서관인 노인이 세상을 떠난다면, 또다른 노인이 새로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백린선생의 부음를 접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자 보탠다. 선생님을 이야기할 적에 도서관과 조선실록과 그의 주옥같은 글을 밀어낼 수는 없다. 대선배께 외람된 망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생의 글은 매우 단정했고, 과장되지 않아 정직하게 읽혔다. 그의 구체적 체험과 탄탄한 공부에서 연유했기에 자연스럽게 읽혔던 거다. 선생이 남긴 글에서 읊으셨던 신사임당의 시詩이다. 인용한다.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외로이 서울길로 떠나는 이마음 때때로 고개돌려 북평쪽 바라보니/흰구름 아래로 저녁산이 푸르구나 (신사임당, 시조) 장로님은 매주 주일 아침이면, 크신 키에 사모님과 함께 교회당 문을 넘으셨다. ‘글을 잘 읽었습니다.’ 말씀 드릴 적이면, 언제고 얇은 미소가 흘렀다. 더 일러주실 말씀이나 있으신 것 처럼 망설이는 듯 싶기도 했다. 장로님의 정치精緻한 글을 더 이상 읽을 수없는 것도 장로님을 잃은 아쉬움 중에 하나다. 장로님의 글과 주신 말씀들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거다. 동네 도서관이 여전히 그곳에 서있는 것 처럼. 그런데, 우리는 더 큰 도서관 하나를 잃었다. 선생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책과 함께 영면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책에 있는 가시덤불 대목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마가 12:26,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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