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아동 노동,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착취 |
보스톤코리아 2015-05-18, 11:45:38 |
어린이날, 큰 아이와 소파 방정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방정환 위인전 기억나? 어린이날 만든 방뚱뚱 아저씨, 알지? 어린이들은 귀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자고 어린이날을 만든거야.” 항일 운동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는 설명할 재간이 없었으나, 어쩌다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아동 노동>으로 새어버렸다. “백 년 전만해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많았어.” “왜 애들이 일을 해?” “가난해서 그랬지.” “한국은 가난해?” “아니야. 지금은 한국도 부자나라야. 하지만 예전엔 가난했어.” “한국이 유나이티드 스테이트처럼 부자였으면 좋았겠다.” “음..그런데 사실 백 년 쯤 전까지는 미국에서도 너만한 애들도 다들 농장에서 일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그랬었어… 옛날에는.” 아동노동: 영국 산업화의 그림자 19세기 전반, 영국의 산업 혁명기가 배경이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에는 빈민원에서 쫓겨나 단돈 오 파운드에 팔려간 올리버 트위스트는 ‘사악한’ 어른들에게 착취당한다. 올리버 트위스트만 억세게 운이 없었던 것일까? 그럴리가! 아동과 청소년 구성원이 학교 교육은 커녕 공장이나 탄광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도 생계 유지가 힘든 것이 19세기 전반부 영국의 노동계급 가정의 일반적인 현실이었다. 물론 어른과는 다른 존재,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아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며, 인류 역사를 통털어 대부분의 시기에 어린이들은 어쨌거나 ‘노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산업 혁명기 초반의 아동노동은 통제가 용이한 취약한 대상에게, 교육의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삶을 갉아먹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결국 영국은 1833년 9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 노동 금지와, 9세에서 13세 사이의 아동에게는 주 48시간 이내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올리버 트위스트들 미국에서도 이미 1832년 뉴잉글랜드 유니온이 “아동들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들의 복지와 건강에 반하여 건강을 위한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일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1833년 매사추세츠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들이 연간 최소 3개월의 학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최초의 아동노동법을 통과시켰으며, 1836년 전미 트레이드 유니온은 최소 노동 연령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기 미국은 영국의 산업혁명기 초반을 답습했다. 기계화로 인한 대량 생산의 시대, 울트라 수퍼 갑의 위치였던 산업자본가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다. 그러나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 사실은 성장과 빈곤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 노동자들, 특히 비숙련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던 이주노동자들은 절대 빈곤에서 좀체 벗어나기 힘들었다. 당시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혹은 그 이상을 일했고, 노동 환경도 척박했다. 하지만 그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급여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어서, 가족 중 어린이들까지도 노동에 참여해야 겨우 생계가 유지 될까말까 한 것이 현실이었다. 자본가 혹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저렴하게, 그리고 쉽게 착취할 수 있는 아동 노동은 이익의 극대화를 의미했다. 게다가 아동노동 투입은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의 수준을 낮추고, 이로 인해 노동 계급은 어린 자녀들을 노동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미국에서 노동 현장에 투입된 아동의 수는 1870년에서 1900년까지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약 두 배 가량 증가하여, 1900년 경 아동노동자의 수는 2백만에서 3백만에 이르렀다. 다행히 미국에서 아동 노동의 문제 역시 몇 가지 요인에 의해 개선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의 캠페인이 어느 정도 입법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1890년에서 1920년 사이 상당수의 주들이Attendance Laws를 입법화하여 14세에서 17세 청소년들의 초 중등교육을 의무화했다. 이로써 1890년대 고작 6%의 청소년들이 중등교육을 받고 있었다면, 1920년에는 이 수치가 30% 가량으로 늘었다. 아동-청소년 노동자들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다. 가령 1903년 필라델피아에서는 섬유 노동자들이 주당 최대 55시간 노동 및 최저 임금의 상향조정을 내걸고 파업에 나서는데, 이 중 약 10%는 아동 노동자들이었다. 파업의 성공여부와 관계 없이, 이들은 아동 노동 착취의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마침내 1916년에서 18년 사이, 아동노동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아동착취의 역사가 끝났다고? 천만에! 그래서 미국에서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가 사라졌을까? 현재 통계에 잡히는 것만 전세계 14% 가량의 아동이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노동하고 있다. 그 아동노동의 절대 다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미국과는 무관한 일로 치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최빈국들이, 아이들까지 하루 종일 노동해도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적어도 소비만능주의의 덫에 빠져있는 우리들이 값싼 물건 값에 취한 무분별한 소비의 문화를 재고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아동 노동 착취의 연대책임이 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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