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뿌리(10)>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1:53:06 
양산 부부총 귀걸이
양산 부부총 귀걸이
2014-08-29

훈족의 원류로 지목된 신라, 가야

지금까지 신라 김씨와 가락 김씨의 뿌리가 흉노왕자 투후 김일제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문무왕 비문 기록과 삼국사기 기록을 근거로 지적한 바 있다. 비문의 기록뿐만 아니라 신라 가야 사람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풍속과 유물 유적이 흉노를 비롯한 북방유목민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 더욱더 김일제 원류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17대 내물왕 때부터 신라 김씨가 박씨와 석씨를 제치고 왕위를 독점하면서 관혼상제 풍습이 흉노 스키타이 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부터 흉노 스키타이 묘제인 적석목곽분이 신라 김씨 왕족의 기본 묘제가 되었고 왕의 이름도 마립간이라는 흉노 말로 바꿔버렸다. 순장의 풍습도 있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을 순장시키는 것도 흉노와 동일하였으니 경주 천마총이나 김해 대성동 1호분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흉노는 자작나무를 선호하고 숭배하였는데 신라는 국내에서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자작나무를 끔찍이 귀하게 여겼다. 천마총의 천마도 그림은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작품이고, 신라의 모든 관모(내관)의 안쪽은 자작나무 껍질을 입혀놓고 있다. 신라 가야의 무덤에 부장되어 있는 수많은 오리, 기러기 토용은 흉노, 스키타이의 신조(神鳥) 사상과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위지 동이전에 이르기를 ‘변진에서는 유리와 옥을 귀하게 여긴다’라는 기록이 있다. 김해 양동리를 비롯하여 경상도 일원에서 원삼국 시대 때 유리와 옥으로 만들어진 많은 장신구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황남 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 대총 북분 금제 고배
 


 

하지만 김씨들이 왕위를 독점한 다음부터는 흉노나 스키타이처럼 금(金)이 제일 귀한 보석으로 등장하게 된다.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금관이 발견된 금관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해서 귀걸이, 관모, 관모새장식, 과대(허리띠), 목걸이, 팔찌, 반지 등 무려 7.5kg이나 되는 금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금관이 출토된 모든 무덤과 많은 적석목곽분에서는 의례히 수많은 황금 장식품이 발굴되어 황금왕국 신라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 황금 왕국이라 일컫는 네 나라가 있다. 스키타이, 페르시아, 흉노에 신라가 포함된다. 10세기 아랍지리서에는 신라인들이 밥을 먹을 때 금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사람들이 금은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사치풍조가 만연되자 법흥왕은 이를 견제하려고 오로지 성골 왕족들만 금은을 사용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흉노에게 황금은 왕을 의미한다. 신라도 왕이 될 수 있는 성골에게만 금(金)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황금즉 왕이라는 등식을 신라와 흉노가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4-6 세기 흉노 영역에서 발굴된 황금 가면, 누금 기법(세립세공)
4-6 세기 흉노 영역에서 발굴된 황금 가면, 누금 기법(세립세공)
 


이상에 열거한 10여가지를 예로 들어 신라, 가야와 흉노 사이에 친연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왔지만 실은 더많은 사항에서 두 종족 간에 친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는 동양의 사학자들이 아니고 유럽의 사학자 (史學)들이 지적해내고 있다. 서기 375년에 알타이 서쪽에 살던 훈족들이 서쪽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기상변화가 생겼다. 갑자기 온도가 하강해서 가축을 사육할 목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서쪽의 동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서고트 왕국까지 침범하자 그곳에 살던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것이다. 

훈족의 왕 아틸라는 삽시간에 프랑스, 스페인까지 전유럽을 석권하고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을 제압하고 100여년동안 전유럽에 군림하였다. 아틸라가 향하는 곳에 그를 대적할 군대나 장군이 없었다. 도대체 훈족과 아틸라는 누구인가? 

이들은 중국 북쪽에 살던 흉노족의 분파라는데 이견이 없다. BC 120년경에 흉노는 한무제의 위청, 곽거병 장군에게 패전한 뒤 수많은 흉노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이주했다. 이후에도 아시아에 정치적 변혁이 있을 때마다 3회에 걸쳐 흉노인들이 이주를 계속해온 것이 훈족의 모체가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세계를 정복한 사람이 3명이 있었다. 기원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고, 13세기에는 몽골의 징기스칸이 있었다. 4세기에는 훈족의 아틸라가 있는 것이다. 징기스칸과 아틸라는 모두 아시아 흉노의 후손들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두번이나 아시아의 야만족(?)에게 유린당한 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생각해왔다. 징기스칸보다 아틸라는 지금까지도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이유는 아틸라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등 유럽의 심장부를 유린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이후로 유럽의 학자들은 훈족의 원류를 찾아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두번이나 크게 당했으나 3번이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노인울라 흉노 추장 금모자
노인울라 흉노 추장 금모자
 

일예로 소련은 스탈린 치하 이래로 몽골의 샤만들을 수없이 처형해오고 있었다. 유럽의 학자들은 지난 10여년 동안에 우리가 듣기에 깜짝 놀랄 사실을 계속 발표해오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 가야의 편두 순장 풍속과 훈족의 활 반곡궁이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맥궁과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독일의 국영 TV방송 ZDF는 훈족의 원류를 신라 가야로 추정하는 방송을 방영했다.

미국의 교육 방송 Leaning TV는 1997년에 훈족의 원류가 신라 가야라고 확정 지으면서 한반도로부터 유럽에 이르는 훈족의 가상 이동경로인 “Ko-Hun Road”라는 지도를 만들어 제시까지 하였다. 유럽 학자들이 제시한 흉노, 훈족과 신라, 가야의 친연성 외에도 수많은 유사점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말안장과 말등자, 호형 대구, 마형 대구와 같은 마구, 바지를 묶어 매는 대님(흉노 말로는 다님), 종장판 투구 목곽을 불에 그슬리는 풍속, 칼∙창과 같은 무기를 훼손시켜 묘에 부장하는 풍습, 선대의 묘를 파괴하는 풍습 등 수많은 친연성이 깔려있는 것이다. 솟대 풍속도 똑같고 한국의 서낭당과 몽골의 “어와”역시 색색깔의 천을 걸어 놓는 것이 아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럽의 학자들이 신라 가야와 흉노, 훈족 간의 관련설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 역시 흉노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흉노에 대한 소개, 훈족과의 친연성을 먼저 얘기하고 가야 건국과 쌍어문과 함께하는 허황옥 왕후 이야기로 이어질 예정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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