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번에는 신라의 화랑도 보다 훨씬 앞서 존재했던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살펴보자. 선비라고도 불리는 선배는 이두자로 선인先人(또는 仙人)이라고 하며 조의선인(검은 빛깔의 옷을 입은 선인)이라고도 하였다. 10월9)의 제사 때에 군중들 앞에서 사냥, 무예 등 여러 경기에서 이긴자를 선배라 하였고 그들은 나라에서 녹을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닦았다.
그리고 그 선배들 중에서 학문과 무예 그리고 선행이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아서 스승으로 섬겼으며, 그는 검은 비단의 예복을 입었으며 일반 선배들은 검은비단을 허리에 둘렀다. 스승 중에서 수장은 ‘신크마리’ 또는 ‘두대형/태대형’ 이라 불리었고, 그 다음은 ‘마리’ 또는 ‘대형’으로, 맨 아래는 ‘소형’이라 불리었다. 이 선배들은 평시에는 학문을 연구하고 무예를 닦았지만 전쟁이 나면 자체부대를 조직하여 전장에 나아가 용맹하게 싸웠다. 그리고 승리하였다. 그들은 당태종이 50만 대군으로 안시성을 공격할 때도 결사대로서 그 전공을 천하에 떨쳤다. 또한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기에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케한다.10) 고로 고구려를 침입했던 수, 당나라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상고사에서는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유년의 어린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하여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배양하였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 그것들이 부딪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된다. 을파소나 명립답부, 을지문덕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모두 조의선인들이었고, 우리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고 했다.
또한“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때의 조의선인으로 선발되었던 을밀선인乙密仙人 문하에는 조의선도 3,000명이 다물방지가多勿邦之歌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하였다.(다물: “되 물린다”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시대의 태평성국으로 복고하겠다는 의지를 뜻함)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제도가 고구려에 와서는 조의선인 제도로, 백제에서는 무절武節(일본의 사무라이武士로 이어짐)로 발전했으며, 신라에서는 화랑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시작되기 2,500여 년 전인 단군조선시대에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던 미혼의 자제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했으며(11대 단군인 도해단제 재위 57년 – 단기 3891년, 서기 전 1891년), 그들이 출행할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무궁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했다. (13대 단군 홀단단제20년, 단기3763년, 서기 전 1763년)” 라고 했다. 또한, 이 맥李 陌11) 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을파소乙巴素는 국상國相이 되더니 나이 어린 준걸俊傑들을 뽑아서 선인도랑仙人徒郞이라 하였다. 교화를 관장함을 참전參佺이라 하였으니 무리들을 선택하여 계戒를 지키고 신神를 위하는 일을 맡겼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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