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2주기, 그리고 팍스 시리아나 (2)
보스톤코리아  2013-09-23, 16:33:51 
9.11 테러 이후 발발한 이라크 전쟁으로 여러 모로 미국에게 비극이었다. 미국이 이라크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그리하여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 (Weapons of Mass Destruction, 이하 WMD)는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고, 아랍권의 극단적인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나마  이라크가 전쟁덕에 더 자유롭거나 민주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니. 애초에 “미국은” 다른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있으며 해야 미국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기거나 자기 기만이지만.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지난 주 칼럼 (오늘 칼럼의 전반부) 말미에서, 다시 WMD를 매개로 한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 앞에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이르렀다. 꽤 이 칼럼을 계속 쓰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오늘 목도하는 많은 사건들이 언젠가 본듯한, 미국사의 어떤 장면에선가 등장했던 사건들에 닿아있다는 점일게다. 

가령, 2003년 개전한 이라크전은 1991년의 걸프전의 반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걸프전은 (2003년 이라크전과는 달리) 쿠웨이트를 괴롭히는 깡패 혹은 중동의 히틀러로 부상한 후세인에 대한 전세계의 응징이자 인도주의적 개입이라고 믿는 듯 하다. 

그렇지만, 표면상의 명분이 무엇이었건 간에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이나 중동의 석유를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나, 탈 냉전시대 국제 질서에서의 패권 같은 이유들이 더 솔직하고 깊숙한 이유였다. 두 전쟁 모두 결과적으로는 이라크의 기반시설을 (재건이 필요할정도로!) 완전히 붕괴시켰다. 전쟁 기간의 차이만큼, 미국 측이 “부수적 손실(Collateral damage)”이라고 표현하는 민간인 사상자 피해 규모에서 두 전쟁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의 폭격, 공습으로 인한 사망을 “이차적, 부수적”이라고 보는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되곤했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성격일게다.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제 2 공화정의 수립과 쿠데타로 인해 제 2 공화정이 무너지는 과정을 연구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 farce)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첫 번째) 비극은 인권선언으로 유명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앙시앵 레짐 (구체제)을 무너뜨리고 탄생한 프랑스의 공화정이 나폴레옹이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붕괴된 사건이다. 약 반세기 후 1848년, 프랑스는 다시 공화정부 (제 2 공화정)를 수립했다. 그러나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1851년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제를 폐지하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정치적 모략가나 사기꾼에 가까운 루이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정치를 들었다 놨다 농락하는 것이 가능했던 한 편의 코메디의 모양새로.  

희극의 외피를 쓴 반복: 원래의 비극보다 더 끔찍한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비극이었지만,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쟁을 일으킨 그 곳에서 아들 부시가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WMD의 위험을 인내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 일으킨 전쟁에서 대량으로 민간인 살상이 벌어졌다는 웃지못할 코메디는, 1991년 걸프전이라는 비극에서 되풀이된 역사일게다. 물론, 1991년 걸프전은 중동에 깃발 꽂고 “이제야 베트남전의 악몽에서 벗어났다고”자위하는 희극의 역사이기도 했다. 

시리아의 경우는 이전의 전쟁들과는 다를 지도 모른다. 2년 반 동안 내전을 치르면서 정부군과 반군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정부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에 의한 참사가 발생한 상황에서 국제 사회가 전혀 손 놓고 방관할 수는 없을터이니.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 역시 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공습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끔찍하다. 혹여라도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이 정말로 어떤 명분을 들어서든 2003년 이라크 전쟁이라는 비극 다음에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변화의 아이콘 오바마에게 전쟁광 (warmonger)의 별명을 가져다주는 비극일뿐더러, 평화라는 명분상의 목표를 절대 달성하지 못한 채,수퍼맨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희극이 될 것이다. “희극의 외피를 쓴 반복이 원래의 비극보다 더 끔찍하다 (지젝)”는 말, 그래서 맞다. 

<팍스 시리아나 Pax Syriana>라고 하는 말이 있다. 원래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반의 레바논 강점기 동안, 시리아의 존재 덕에 주변의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지 않았던 덕분에 미국이 얻는 어부지리의 이득이 컸던 “시리아에 의한 평화”를 일컫는다. 희극의 외피를 쓴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반복되는 희비극의 전쟁사가 보여주듯) 적어도 군사적인 개입은 답이 아니다. 팍스 시리아나가 아닌 시리아 사태 해결을 통해 얻어지는 종류의 평화를 원한다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지음, 최형익 옮김, 비르투 출판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예보 지젝 지음, 김성호 옮김, 창비 출판사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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