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북동부 대정전, 그리고 전력 민영화
보스톤코리아  2013-08-19, 13:48:21 
요즘 한국의 지인들과 연락할 때마다 끝나지 않는 폭염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연일 섭씨 30도가 넘는데, 최악의 전력난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시책에 따라 관공서고 백화점이고 지하철이고 냉방기 가동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중단시켜버렸다는 그 이야기. 블랙아웃 같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온 국민은 강요된 절전의 상황에서, 이렇게 전력 공급이 부족하면 원전을 더 확대해서 값싼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흐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십 년 전 오늘을 잊기가 힘들다. 8월 13일. 학회와 좀 긴 여행 끝에 집에 돌아가기 직전, 정말 오래간만에 뉴욕에 사는 이모 집을 찾았다. 8월 14일 낮. 모두들 출근해 비어 버린 이모네 집에 혼자 남아 하루 종일 뒹굴 뒹굴, 냉장고 털어 먹고 음악 틀고 에어콘 돌리며 해리포터 5권을 읽고 있었던 기억. 그러나 늦은 오후, 집안의 모든 전기기구가 갑작스레 멈추면서 그 나른한 행복감도 순식간에 멈추었다. 그 유명한 2003년 북동부 정전사태가 벌어진 날이 하필이면 내가 뉴욕을 찾은 바로 그 날이었다. (OTL)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는 황당함 속에 실내 온도가 급상승하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설마, 정말이지 기분탓만은 아니었다. 그 날은 유독 더웠다. 급히 돌아오신 이모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근처 공원의 나무 그늘에 의지해 해가 떨어지고 한 낮의 열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촛불만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답답했다. 말그대로 “블랙-아웃”이었다. 티브이가 나오지 않으니 자동차의 라디오에 의지해 뉴스를 들어야했고, 대강의 분위기 파악이 가능해졌다. 휴대전화 충전을 못하는 상황에서 이곳 저곳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지하철 운행이 멈추었던 탓에 맨하탄에 출근해 있던 사촌 동생은 그날, 귀가를 포기한 채 동료의 신세를 졌다. 자기는 약과였댄다. “언니, 삼십층에서 엘리베이터 멈추는 거 상상해봤어?”  

그 다음 날까지도 전력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맨하탄 시내 곳곳에 꼬질꼬질한 사람들이 차고도 넘쳤다. 아마도 정전으로 인해 호텔 체크인도 못하고 오랜 여행 끝에 씻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운 듯한 여행객들이 소지품은 멀쩡한데 영락없는 난민들의 모습으로 길거리에 나 앉아 있었다. 저들 중에 평~생 처음으로 부푼 꿈을 안고 뉴욕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감정이입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난다. 

그 날의 정전은 뉴욕만이 아니었다. 뉴욕, 뉴저지, 캐나다의 온타리오 지역, 그리고 오하이오등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지역에, 이틀에 걸친 정전으로 약 5000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최소 11명의 죽음이 따른 “북동부 대정전”이었다. 곧이어 정전 당일  “적어도 테러리스트의 소행은 아닌것만은 분명 (부시 대통령)”했던 정전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뒤따랐다.  
그날 정전은....9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북동부 주민들이 합심하여 에어콘을 빵빵하게 돌려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벌어진 “최악의 전력난”이 가져온 사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몇가지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빚어진 문제였다. 나의 행복한 순간이 멈추기 두어시간 전, 오하이오주 북부의 고압선 하나가 나무와 충돌하면서 고압 전류에 의해  누전이 발생했다. 

누전이 대규모 정전으로 비화하는 일은 사실 흔치 않다. 이런 경우 고장을 감지하고 전력망을 차단 (trip)함으로써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오하이오주 소재 전력 공급사인 First Energy의  비상시 경보를 내릴 수 있는 알람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오작동을 했던 것. 이로 인해 누전의 문제는 제 때 인지되지 못했고, 주변 발전소들에 전력 수요가 몰리면서 연쇄적인 정전이 발생했다.  

연쇄적인 정전은 불가피했을까? 이러한 비상시를 대비하여 전력 공급의 신뢰도를 모니터링 하는 별도의 회사가 존재하는데, First Energy의 전력 공급 신뢰도는 MISO라는 회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사고 당일,  MISO에서는 데이터 설정 감시 프로그램 상의 이상을 발견하였으나, 이를 수정한 후 시스템을 복구하지 않는 매우 중요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 모든 부주의 혹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실수와 불운들의 합은 결국 재앙에 가까운 대정전을 불러온 원인들로 밝혀졌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과 인명피해를 가져왔던 북동부 대정전 사태는 뭔가 기술적인 (technological) 데에만 있었을까? 1992년 발효된 에너지 정책법 (Energy Policy Act of 1992) 이후 미국 전력 산업 대부분은 탈규제, 시장 경제 논리 중심의 구조조정을 겪었다. 문제가 된 오하이오 발전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기회사에서 전기를 유지보수하는 인력과 예산이 크게 줄어들어버렸던 것.  전기와 같은 공공재를 다루는 데 있어 공기업이 “이득”을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할까? 효율이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십년전의 오늘이 그리 이야기해줬다.  

<참고한 자료> “The 2003 Northeast Blackout--Five Years Later,” <Scientific American (August 13, 2008)>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cfm?id=2003-blackout-five-years-later 
후쿠시마 노부오, “북미 대정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전기평론 (2004년 12월)>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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