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본장(歲月本長) |
보스톤코리아 2013-08-12, 12:14:22 |
유난스럽지 않은 여름은 없다. 올여름은 길고 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슬며시 찾아든 가을기운이 제법이고, 하늘이 푸르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은 조급하고, 가을을 다구쳐 보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자연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계절을 바꾸는 데도 말이다. 세월본장(歲月本長), 풍화설월 본한(風花雪月 本閑). 채근담에서 한구절이다. 세월은 본디 길고 사계절은 한가롭다는 말이다. 유유자적에 시키지 않아도 계절은 변한다는 말일게다. 하지만 급히 내려 쏟는 모래시계 안에 모래를 쳐다보고 있으면, 세월이 그리 긴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은 매우 빠른듯 싶다는 말이다. 세월과 시간은 그 말뜻에 차이가 뚜렷하지 않을 텐데, 세월은 길고 시간은 빠르다 해야 할까. 인터넷에서 찾는 키워드중 ‘타임’이 제일 횟수가 많다 했다. 사람들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동서고금에 세월과 시간이 주된 관심사인 모양이다. 입추(立秋)라 했다. 이십사절기로는 가을 문턱을 넘어 섰다. 때를 맞춰 볏날이 익기 시작 할게다. 햇살이 따가워야, 벼가 굵어지고 고개를 숙인다. 아직은 노란 곡식알이 초록 볏잎과 사뭇 조화롭지 싶다. 차츰 황색이 푸르름을 이겨 갈 것이고, 메뚜기도 기승을 부릴 게다. 늦여름에 초가을이면 코스모스가 같이 와야 알맞다. 더욱 코스모스는 무더기로 피어야 코스모스다. 한 줄기 한송이 피었다면 그건 너무 외뢰워 가냘프다. 큰 키에 바람이라도 불라 치면 흔들려 애처로울 게다. 형형 색색에 초록 꽃대와 어울려 바람에 무더기로 흔들려야 가히 가을에 어울릴 거란 말이다. 또한,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시골역사 주변에 피어있다면 초가을 그림이 그럴듯 할 거다. 한적해야 하고, 바다를 끼고 있으면 더욱 아름답지 싶다. 동해안 바닷가 정동진역을 떠올렸다. 연속극에선 파도가 높았고, 바람이 불었다. 이런 소박한 모습들은 미국에선 직접 볼수 없으니 사진으로만 본다.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려 애쓴다. 텔레비전 연속극 모래시계 열풍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내 어머니가 다니러 오셨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모래시계 보셨지요.’ ‘비디오 빌려 오는데 한번 더 보시겠어요.’ 어머니가 낮 시간 지루할 때에 보시게 한국 드라마 테입을 빌려 오리라 했다. ‘우리집엔 에스비에스 가 안나온다.’ 어머니 대답에 내가 넘어지는 줄 알았다. 동문서답인데,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 아직 에스비에스는 서울에서만 시청가능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냥 못 봤다 하면 될텐데, 에스비에스 방송이 나오지 않는 것 까지 아들에게 책임을 물었고 내게 불평한 거였다. 질책이 준열했다. 덕분에 다시 스물몇개 테입을 빌렸고, 모자母子는 나란히 앉아 눈이 침침해지도록 열심을 다해 테입을 공부했다. 모래시계는 에스비에스에서 방영됐다. 모래시계에 나왔던 정동진역도 시골역이다. 해무였던가. 물안개가 끼었던가. 아니면 바다소금기였나. 바람이 몹씨 불던 그날. 여주인공이 날리는 머리를 쓸어 올렸는데, 거기 그 플랫폼에 바닷내음이 두꺼웠다. 하긴 바람 부는 날 안개는 없을 것이니, 파도에 물보라 였는지도 모른다. 정동진역에 가면 좋을 한창 여름의 막바지이고 가을의 초입이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했는데, ‘코스모스를 보고 싶다면 기차를 타라’고 말을 바꾼다. 정동진 역사(驛舍)주변에 코스모스가 한창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 정동진에 가려면 청량리에서 중앙선을 타고 영주까지 갔다가, 기차를 갈아타야 했고 북동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옛적 이야기이다. 정동진은 실제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다는데, 그게 그럴 듯하게 들린다. 정동진이 正東津인가 보다. 정동진에서 해를 맞을 수 있을텐데, 보스톤바닷가에서도 해뜨는 걸 볼수 있을게다. 해가 뜨고 져서 날이 가고, 계절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변해간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6) 모래시계 연출자가 세상을 등졌다 했다. 그가 만든 연속극이 정치(精緻)하더만, 명복을 빈다.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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