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
보스톤코리아  2012-07-16, 13:24:32 
꽤 오래전이다. 한국에 하수영이란 가수가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라는 가요를 불렀다. 낮지만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젖은 손이 애처러워…’ 라고 불렀던 거다. 아직 총각이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내가 괜히 가슴이 찡 했다. 이제 장가 갈 나이가 되었나 했고 스스로 겸연쩍어 했다.

내 생일날 이다. 아내가 물었다. 저녁을 나가서 먹을 것인데, 어느 식당이 괜찮겠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짜장면 먹을래, 치즈 팩토리에 갈래? 으응, 짜장면 먹을란다. 아냐, 월남국수 먹어라. 아니, 그럴 거면, 왜 묻냐? 그냥, 당신 생일 이니까. 뭐 이런 식이다. 결론은 나와 있지만, 형식상 의례상 우리에게는 통상 이런 대화가 오갔다. 그럼 난 짬뽕을 먹을 란다. 아니면, 초밥을 먹든지. 아내의 강요는 진작에 시작 되었다.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이것도 상당한 추억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맞은 새해였다. 달력이 귀하던 시절이다. 미국은 왜 은행달력이 없는지 이해 할 수 없을 때였다. 어렵게 교회 달력을 구했나 보다. 아내가 한장 한장 들추며 , 중요한 날짜에 붉은 색으로 표시 했다. 시어머니 생신, 남편 생일, 본인 생일, 결혼 기념일, 시아버지 생신, 장인 생신, 장모 생신. 이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아이고 많기도 하다. 기제사는 생략되어 있다만, 잊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날들은 은근히 많았던 거다. 성탄절은 물론이고, 우리 처음 만난날은 가을이었다고, 시월에 표시 되었다. 아이가 태어 났다. 당연히, 아이의 생일이 추가되었다.

아직도 신혼일 때인가 보다. 아내는 자기 생일날을 내가 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고, 내게 일일이 챙겨 주었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날 몇 주 전부터, 잊지않게 나에게 반복교육 했다는 말이다. 세뇌교육일 것이므로, 아무리 무심한 남편인 나라 해도 잊을 수 없다. 날짜는 이 날이고, 선물은 어디서 이것을 사야 할 것이다. 또한 그날의 이벤트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세부계획도 잡혀 진다. 물론 해마다 이벤트와 선물이 지켜진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에 잊는다면 당연히 난 고난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요사이에는 이런 교육은 없다. 내 스스로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착찹하다 해야 할 것인가.

드디어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이 푸른 시, 7월에 세상에 왔다. 칠월의 여름은 푸르다. 그 말 밖엔 적당한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삼사월의 풋풋함과 초여름에 피는 꽃들은 화려할진대, 찬물에 세수하는 싱그러운 오월은 아니라는 말이다. 7월은 진한 청록에 더움일 것이다. 내 어 머니가 말했다. ‘네 장모는 참 고생 했겠다. 한여름에 네 처를 낳느라 무지 더웠겠다.’ 라고 말이다. 한여름에 해산은 고생스럽다.

푸른 시절에 맞는 이벤트를 이제는 나 혼자 만들어야 한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세뇌교욕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도움을 받으며 고민이 시작되었다. 궁리에 고민 끝에, 아내를 위해 이글을 신문에 보내기로 했다. 아내가 읽었으면 하는 내 바람이고,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이글을 읽으면, 아내는 매우 당황해 할 것이다. 아내가 당황해 하는 걸 보면 내가 더 당황해 할지도 모르겠다.
아내에게 바치는 시를 찾아 냈다. 이병훈, 조한용 두 시인의 시詩에서 발췌했고, 뒤섞었다.

‘새해 달력에
표를 살짝 해두었다.
그날이 오면
아침은 내가 만들어야지
드러내놓을 수 없는 이 야속한 감동
코박고 사는 일이 때로는 시큰 할때도 있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 대신 몇번째 생일인가는 생각치 않기로 했다. 한참을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고맙다. 한여름 더위를 뚫고 태여나 줘서 고맙다.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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