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간 고생 많았)어요! |
보스톤코리아 2012-04-09, 15:18:19 |
가난하고 외로운 무명화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에 유명한 여배우가 순회공연을 오게 되었고, 그녀를 몹시 좋아하고 있던 화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고백을 궁리하던 끝에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보이는 모든 곳을 장미꽃으로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무명화가였던 그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았습니다. 화실과 집과 물감과 그림 ... 심지어는 자신의 피까지 팔아서 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온 도시를 다니며 장미꽃을 사들였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그녀가 잠자는 동안 이 가련한 화가는 밤새도록 장미꽃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그녀가 잠든 호텔방의 창가, 호텔 광장, 화단, 거리며 골목까지 모두 장미꽃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단잠에서 깬 여배우는 창문을 여는 순간, 온 세상이 장미로 뒤덮인 꿈같은 광경에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해 합니다. 누가 장미를 보낸 것일까. 그녀는 너무나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공연이 끝나도록 누가 장미를 보냈는지 끝내 알 수 없었던 여배우는 마침내 호텔을 나섰고 예정된 기차에 올랐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어떤 부유한 팬이 보낸 선물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기차가 떠나는 동안, 화가는 멀리 언덕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내용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독립공화국이 된 그루지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지요. 남자는 니코 파로스마니라 하고, 여자는 마가리타라고 하는 여배우였다고 합니다. 이름까지 알려진 걸 보면 꽤나 사실적이지요? 실화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라트비아의 민요 <마라가 준 인생>의 내용이랍니다. 이 노래를 알라 푸가체바가 러시아어로 불렀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백만 송이 장미>입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심수봉의 애절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있지요. 심수봉의 음색도 애절하지만 저음의 러시아어로 들어보면 아~, 정말 저 깊은 곳으로부터 가슴이 저려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 남자의 순정. 보상도 바라지 않는, 단지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친 남자. 오늘날에도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이 남아있을까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겠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전설로, 노래로, 상상 속에서만 전해지고 있지 않겠어요? 일설에는 그 남자가 드디어 그 여자랑 결혼에 성공했다고도 합니다.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요? 그런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 텔링은 모두 실패작이란 거 잘 아시죠?) 가난한 화가와 예쁜 여배우가 행복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마을에 잘 생기고 돈도 많은 소위 엄친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랑만 있으면 라면으로도 배부를 것 같았는데, 돌연 여자는 이 돈 많은 남자를 따라 이국으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여자를 실은 기차가 떠나가는 것을, 남자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부터는 아까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러면 더 비참하지요? 여자가 너무 속물적이 되고, 뒷맛이 영 개운치 않게 되니까, 그냥 첫 번째 이야기로 가야겠어요. 얼마 전 결혼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남들은 10년 주기로 아내에게 뭔가 큼직한 선물을 해준다던데 나는 그 ‘남들’ 축에 끼지 못했습니다. <백만 송이 장미>의 그 남자처럼 나 역시 찌질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어요. 누구처럼 물방울 다이아나 동그라미 네 개 붙은 구루마의 열쇠를 줄 처지도 못되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저기 유럽 어딘가로 해외여행을 갈 여유도 없네요. 생각 끝에 온 집안을 백만 송이 장미로 장식하는, 그런 무모한 짓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대신에 아이들과 함께 조촐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미국 말로는 뭐 서프라이즈 파티라나요. 한 사람의 머리보다는 역시 아이들 둘의 머리까지 맛대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더군요. 아내의 귀가시간에 맞추어, 거실을 가로질러 수 십 개의 촛불로 길을 밝히고, 문간에 기다리고 있던 둘째 아이는 길라잡이가 되어 엄마를 안내하고, 중간에 서 있던 큰 아이는 축가를 부르며 준비한 히야신쓰 화분을 바치고, 테이블에 대기하고 있던 나는 두 개의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바칩니다. 쑥스럽지만 큰 아들이 연습시킨 대로 아내에게는 이렇게 말하지요. “여보 그간 고생 많았 어요.” 장영준 보스톤코리아 독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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