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의 용기
보스톤코리아  2010-01-11, 14:46:03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에 '오십대에 지천명'이라, 오십대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고하는데 내자신을 돌아보면 예전보다 조금 현명해지고, 마음은 아직20-30대같으나 몸은 점점 예전같지 않고, 생활은 쳇바퀴돌듯하고...

뭔가 밑지고 사는 것 같은 의식에 사로 잡혀서 마음이 조급해지며, 마음의 여유없이 살아오던 인생을 한번 쯤 뒤돌아 보는 나이가 바로 오십대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십대를 중심으로 하는 동창회가 잘된다고 한다.
또 주위에 돌아보면 어느날 갑자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친구가 격에 어울리지 않게 오토바이를 구입하거나, 무리해서 비싼 차를 사거나, 혹은 삼십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옛친구와 갑자기 전화로 한두 시간 수다를 떤다든지. . .

그런 비슷한 일이 최근에 나에게도 있었다. 지난 10월, 대학 시절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히말라야 트랙킹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이친구는 한국은 물론 외국에도 잘알려진 현직 등산가이다.

처음 그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가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괜히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었다. 젊었을 때 등산을 좋아했고, 대학4학년 때는 대학산악부 모임의 리더로도 활동할 정도로 열심이었었지만 내 나이가 56세인데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미국에 온 이후 대도시에 머물며 학교와 직장을 벗어난 일이 없으므로 산과 가까이 해본 지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이민생활이 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지냈는 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 30여년 세월이었다. 초창기에 산이 없는 시카고에 살았던 것은 핑계거리가 되지만 ‘91년 로드아일랜드로 와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으니.

그러나 열정은 있어서 산악에 관한 책과 잡지는 꾸준히 접하였다. 어쨌거나 그런 내가 갑자기 하루에 7- 8시간10일 동안 걷는트랙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싶었다. 그것도 동네산이 아닌 히말라야 같은 고소에서. 그리고 또 뱃살도 빼야 하고, swine flu의 두려움, 시원치 않은 오른쪽 무릎, 직장일 등등…

하지만 이것저것 다 생각하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기회는 항상오는 것이 아니거늘..... 암튼 ‘그냥 눈 딱 감고 일을 벌이고 걱정은 나중에 하자’는 배짱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부터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며 체력을 강화하는 훈련을 하였다. 천성이 게으른 나도 놀랄 정도의 적극성과 용기에 감탄하며 설레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트랙킹 대원은모두 모교 전,현직 산악 회원 (오십대 4명, 40대 3명, 재학생 1명) 8명으로 구성되었다. 루트는 포카라라는 도시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나야플에서 (1,070 m) 시작하여 푼힐 전망대를 (3,200m)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4,130 m) 까지 11월20일 부터 11일동안의 트랙킹이다.

히말라야는 위도가 낮아서 아래 지역은 11월이지만 전형적인 초가을날씨였다. 트랙킹 3일째부터 멀리있는 눈산들이 보일듯이보일듯이 가까워 오는데, 그로부터 한4일을 더가야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네팔의 트랙킹길은 소, 염소, 당나귀들이 항상 다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해서 냄새가 많이나는 똥밭이다. 3일째부터 대원 중에 둘이 고소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고생을 많이하였지만 나는 이상하게 고소에 오를수록 밥맛도 있고 컨디션도 더욱 좋아지는 것 같았다. 경험 있는 우리 동기 친구가 농담으로 다음 원정 때는 나를 공격조의 일원으로 시켜주겠다고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 도착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4,130 m)에 도착한 것은 11월27일이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3,700 m)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2시간 거리이며 목적지에 도착 한 10분 후에 해가 떠서 주위에 있는 봉우리들, 즉 안나 푸르나, 마차프차레 봉들이 모두 금빚으로 물들었다. 몹시 추웠고 산소가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참으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경관에 우리는 서로 말도 없이 넋을 놓고 그 웅장함에 빠져 버렸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활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안나푸르나 (8,091 m)는 히말라야에서 8,000m급으로는 처음으로 1950년에 등정되었다. 잘알려진대로3년 후에 에베레스트 (8,840m)가 등정되었다. 마차프차레 (6,993m)봉은 좀 낮지만 생선 지르러미와 비슷하다고 하여 ‘Fish-Tail’이라고 부르고, 그 형상이 고귀하여 이곳 원주민들에게 신성시 되어서 법으로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영국 등산가들이 등정하였는데 예의로 정상은 밟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한달 전에 한국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가 안나푸르나 정상 도전을 날씨 때문에 포기했고 거의 같은 때에 우리 바로 앞에 거의 다가올듯이 가깝게 보이는 히운출리 (6,441m) 북벽을 오르던 충북 원정대의 대원 두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엄숙함, 냉혹함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오십대의 '조바심'으로 결정한 히말라야트랙킹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참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느낀 것이 많다.

히말라야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은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상상케 하였고, 티없이 맑은 그들의 모습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보다 훨씬 여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베이스 캠프에서 세계의 명봉인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거쳐야 했던 거의 60 시간의 왕복 비행여행, 그리고 그곳에 갈 때까지 거의 6일 간의 똥밭을 걸어야 하는 힘든 여정. 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꿈에 그리던 하얀 히말라야봉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고 또 거의 40년지기 친구들과 아들 또래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회가 깊고 좋은지 모르겠다.

이런 것은 ‘60대에 하면 만용이라할 지 모르나 50대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고 나름대로 정당화해본다. 프라비던스 젠센터의 숭산스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은 "Just Do It" 이라고 한다. 전화 한 통에 30여년 동안 밀어오던 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오십 대의 ‘오기’ 인지 ‘단순성’ 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부려 볼만하다.

조봉섭 (로드아일랜드 주립대학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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