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성당 정광호 도미니꼬 신부, 보스톤 떠난다
지병으로 은퇴, 캐나다 수도원 아닌 한국으로 귀국
한인 성당의 위기상황서 부임 17년간 공동체 이끌어
보스톤코리아  2023-12-14, 16:03:14 
보스톤 성앙뚜앙다블뤼한인성당 주임사제 정광호 신부가 17년간의 보스톤 여정을 마치고 보스톤을 떠난다. 정광호 신부와 12월 12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임 인터뷰를 17년만에 가졌다 (사진제공 = 보스톤한인성당)
보스톤 성앙뚜앙다블뤼한인성당 주임사제 정광호 신부가 17년간의 보스톤 여정을 마치고 보스톤을 떠난다. 정광호 신부와 12월 12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임 인터뷰를 17년만에 가졌다 (사진제공 = 보스톤한인성당)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성 앙뚜안다블뤼한인성당의 주임사제인 정광호 도미니꼬 신부(65)가 17년여만인 1월 말 보스톤 한인공동체를 떠난다. 

17년간 조용히 산책을 하듯 보스톤 한인성당이란 공동체를 이끌어온 정 신부다. 정광호 신부를 검색하면 간단한 2007년 부임 기사 외 다른 이야기가 없다. 마치 얼마전에 보스톤에 도착한 사람처럼. 그러나 그의 부임 당시 상황은 그렇게 조용하거나 간단한 상태가 아니었다. 

2007년으로 돌아가보자. 뉴튼 와반의 세인트 필립스 교회에 자리한 카톨릭 한인교회에서는 박승재 신부의 이임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성도들은 보스톤 교구청의 이임 결정을 반대하며 갈등을 겪었었다. 

보스톤 교구청은 여러가지 수습을 위한 노력을 하던 끝에 급기야 캐나다에 있는 정광호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수도원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있던 정 신부는 한인 공동체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이를 포기하고 보스톤으로 달려왔다. 몸이 좋지 않았던 정광호 도미니꼬 신부는 부임 후 2달간 “이제라도 돌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 신부가 부임하면서 한인 공동체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게 벌써 17년이 됐다고 정신부는 조용하게 말했다. 

사실 부임 이후 정광호 신부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년여간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정 신부를 12월 12일 뉴튼 사제관에서 만났다. 첫 인터뷰가 이임 인터뷰이니 삶은 참 아이러니다.

일반적 심혈관질환과 다른 특이한 심장병을 지병으로 앓고 있는 정 신부는 이번 목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해 귀국한다. 카톨릭의 교구 신부는 보통 70세, 수도원 신부는 80여세까지 신부직을 맡고 은퇴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심장병을 앓고 있기에 ‘젊은’ 나이에 캐나다의 예수성혈수도원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암을 앓고 있는 수도원 원장 신부가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는 정 신부를 ‘방기했다’는 마음이 들어 은퇴를 권고하게 된 것이다. 미국 성당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정 신부는 지병으로 쓰러지면 수도원에서 돌볼 수 없고 한국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와야 하기에 한국행을 선택했다.

“주임신부의 말을 듣고 ‘미적미적 하고 있었는데 주님이 나를 잡아 이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꺼이 순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혼자 한 시간 정도 숲을 걸으며 기도하고 상념을 이어가는 일종의 명상을 가장 좋아하는 일로 꼽은 정 신부는 “은퇴가 결정되자 답답했다. 생각한 적도 없고, 계획한 적도 없었다. 한국 생활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은퇴 후 홀가분한 상태로 유유자적할 수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라 의아했다. 

수도원 신부의 모든 소득은 수도원으로 간다. 그야말로 무소유다. 대신 은퇴 후 신부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기에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 그러나 지병으로 인해 한국으로 가게 되니 먹고 사는 것을 이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평생의 목회에도 매달 수도원이 지급하는 소액이 생활비의 전부다.

“음식하는 남자가 부럽고 존경스럽다”는 정 신부는 “은퇴는 혼자서기이니 음식을 할 수 있어야 하기에 부엌을 사랑해야겠다”고 말했다. 경북에서 위로 누나 6명에 막내로 태어나 부엌근처도 허락하지 않았던 엄마의 영향으로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낭비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하는 게 제일 약한 부분이 됐다. 

정 신부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부엌에서 서성거리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그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근래 1년 동안 다시 국물을 내는 것을 열심히 했다. 그랬더니 얼마전 한 여신도님이 조그마한 알약 같은 것을 보여주시며 이것을 사용하시면 된다고 했다”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정 신부는 이제서야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위하는 일에는 서툴러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한인카톨릭 공동체를 밖에서 보기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17년간 이끌어 왔다. 그간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성당 건물에 관한 이야기를 뺄 수 없다. 현재 교회로 사용하는 뉴튼의 성앙뚜안 다블뤼 성당은 보스톤 교구가 다른 교회 재정을 보조하기 위해 당초 매각하려 했던 성당이다. 재정위기에 놓였던 보스톤 교구는 10년간 교회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과거 한인 성당으로 이용했던 뉴튼 와반에 위치한 세인트 필립스 성당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한인 공동체는 과거 성당 인근의 다블뤼 성당을 200만 달러에 구입하게 됐다. 이를 위해 약 150여만 달러를 그동안 모금했다. 정 신부는 이 금액을 모금하는 동안 보스톤 교구청에 내야하는 금액을 5년간 면제해 달라고 요청해 50만달러를 절약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 성당의 지붕을 70여만 달러를 들여 수리하면서 아예 당초 주기로 했던 200만달러의 매각 금액까지 면제 받았다. 

정신부는 카톨릭의 희년이 올 때마다 오는 성년에 교구청과 주요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성부가 너희에게 자비로웠던 것처럼 너희도 자비하라. 성년은 자비, 묵상, 감사, 기도하는 해인데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많은데 자비를 베풀 때가 됐다. 같은 신자에게 교회를 파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교회의 소유권을 가진 미국 카톨릭 교회에 가서 감동의 메시지로 호소해 교회건물을 선물로 받아내는데 이르렀다. 지붕 수리비도 보스톤 교구로부터 대출을 받아 수리하고 이 대출금도 그동안 모았던 2백만 달러의 이자로 충당해 부담이 없다. 

12일 뉴튼소재 성앙뚜앙다뷜리한인성당의 사제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정광호 도미니꼬 신부. 성당은 1월 14일 오전 11시 은퇴 미사 및 송별연을 개최한다 

팬데믹에도 한인 성당은 오히려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됐다. 보좌신부의 도움으로 바로 유튜브를 통해 매일 혼자하는 미사를 신도들과 나눴다. 신도들이 흩어지지 않았고, 운신이 어려운 신자도 참여했다. 외부의 신자들도 함께했다. 

정 신부는 팬데믹을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기는 타작과 유사하다고 회상했다. “우리의 삶을 흔드는 힘이 있을 때 가벼우면 날라가고 알맹이처럼 무거운 사람들은 그자리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이 정화의 과정이란 것이다. 

정 신부의 뒤를 이어 주임사제는 배웅진 신부가 맞게 된다. 배 신부는 보스톤 한인성당 출신으로 부제 서품을 한인성당에서 받았다. 정 신부가 추천해 사제가 된 인연이다. “제가 추천해서 신학교에 보낸 신부이며, 과거 “아들 신부”로 불렸던 분으로 저로서도 기분이 좋다. 연세도 40대여서 재미나게 (목회를)할 수 있는 나이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처럼 오래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인사회를 내부인과 외부인의 공통된 시선에서 바라보며 17년을 지내왔던 신부는 “섬사람과 같다”고 비유했다. “외국에 뿌리내리면서 산다는 것은 많은 경우 쉽지 않다. 이런저런 핸디캡을 갖고 있다. 주류문화에 속하지 못하고, 쫓기고, 마치 섬사람처럼 바깥에서 돈을 벌고 고기를 잡아 섬에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낸다.”

“교회도 비슷하다. 세상에서 돈벌고 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바다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우리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자꾸 누가 더 잘났는지 싸우는 느낌’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우리에 속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 한인 사회에 있다”는 그는 “한국 사회는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우리를 꾸리는 것이 강하다는 것을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어서 마음이 씁쓸하더라”고 여운을 남겼다. 

해야 할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정 신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터뷰가 아닌 왠지 같이 기도를 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17년여간 정 신부는 보스톤의 카톨릭 공동체를 이끄는데 모든 심혈을 쏟았다. 이제는 심장병이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몸을 이끌고 어찌보면 낯선 한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가 사랑하고자 하는 공간에서 다시국물을 끓이듯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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