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남모南毛와 준정俊貞(4)
보스톤코리아  2023-10-09, 11:21:27 
최초의 원화 준정이 또 다른 원화 남모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고 북천北川으로 데려가서 살해한(또는 살해하여 북천에 유기한) 사건이 540년에 일어났다(삼국사기에는 576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북천北川은 조선시대까지는 알천閼川이라고도 불렀다. 북천은 경주의 북쪽에서 흐르니 북쪽의 내라는 보통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황룡동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저수지인 덕동호를 거쳐 보문호(보문관광단지)로 흘러 들었다가 시내 황성동을 지나 형산강에 합류한다. 또한 북천은 덕동호에서 보문호까지의 구간은 신평천, 동천동을 지나는 구간은 동천이라고 부른다. 
경주에는 물론 남천도 있다. 남천은 문천蚊川이라고 불렀다. 남천은 외동읍 신계리에서 발원하여 불국사 주변을 거쳐 국립경주박물관, 월정교, 동부역사 사적지구 등을 지나 사정동에서 형산강에 합류한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는 모퉁이 마다 역사의 얼이 서려있지만, 여기서는 원화 준정이 남모공주를 살해하여 유기했다는 북천에 관한 몇가지 사실史實과 전설을 보고자 한다. 
먼저, 알에서 태어난 시조왕 박혁거세를 목욕시킨 곳이 북천인데, 당시의 북천과 현재의 북천이 같은 곳인가에 대한 이견은 있다. 그러나 그간 북천이 홍수로 유명세를 떨친 것을 감안해 보면 물길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천동 금학산 남쪽 자락 끝의 돌출된 부분의 바위에 ‘알천제방수개기閼川堤防修改記’(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6호) 가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은 1707년(숙종33년)에 백성들이 홍수를 예방하고자 알천의 제방을 수리하고 공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새긴 비문이다. 바위 삼면에 90여 자로 정비한 내용과 관련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 북천 인근에 제41대 헌덕왕릉이 위치하고 있는데, 잦은 홍수로 인해 십이지신상이 조성된 왕릉 가운데 가장 훼손이 많다고 전한다.
북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분황사가 북쪽에는 헌덕왕릉이 있다. 북천의 홍수와 관련하여 강 남쪽의 구황 마을과 북쪽의 동천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매년 장마철이면 두 마을 사람들이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래서 동천 마을 사람들은 홍수의 피해를 막아달라고 헌덕왕릉에 가서 빌고, 구황 마을 사람들은 분황사 부처에게 빌었다. 홍수 때마다 동천의 헌덕왕 혼령은 물길을 남으로 돌리려 하였고, 분황사 부처는 구황 사람들을 위하여 물길을 북쪽으로 돌리려고 하였다. 물길이 북쪽으로 흘러들 때는 헌덕왕릉의 비석과 석상이 땀을 흘렸고, 물길이 남쪽으로 지우쳐 흐를 때는 분황사의 부처가 땀을 흘렸다고 한다. 때로는 헌덕왕의 혼령과 분황사의 부처가 워낙 치열하게 다투니 알천의 물이 하늘로 치솟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니고 제방도 쌓고 제방에 나무도 심으며 홍수 극복에 심혈을 기울렸지만 분황사 북쪽은 황무지로 변했고, 헌덕왕릉은 상당히 허물어져 석사자며 문무인상도 모두 홍수로 유실되었다. 즉 위의 전설로 보면 북천(알천)의 홍수가 때로는 북쪽 제방을 넘어 헌덕왕릉을 침수시켰고, 때로는 남쪽 제방이 허물어져 분황사를 침수시켰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홍수의 피해는 근래까지도 이어졌다.
 북천은 상류에 덕동댐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유난히 홍수가 많았다. 1975년에 착공하여 1977년에 완공한 덕동댐은 북천의 홍수 예방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불국사 주변의 농업용수, 경주시의 생활용수, 관광용수의 공급 등 다목적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덕동댐의 장관은 호면에 노출되어 있는 나팔모양의 여수토餘水吐(펌프로 준설한 토사를 물과 함께 배사관을 통하여 토사장으로 부내는 출구, 덕동댐은 길이가 불과 169m 이기에 여수토를 제당堤塘, 즉 둑에 설치하기가 불가능해서 저수지 내부에 나팔형으로 설치해서 홍수를 막도록 설계되었다)인데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알천을 언급할 때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 있다. 제36대 혜공왕이 22세의 나이로 후사가 없이 ‘김지정의 난’ 가운데 피살되면서, 당시 상대등 김양상이 780년 왕위에 올랐다. 5년 후 김양상 역시 후사없이 사망하였으니, 조정의 귀족들은 태종무열왕의 차남 김인문의 현손 김주원을 차기 왕으로 옹립했다. 그래서 북촌, 즉 알천 북쪽에 살던 김주원이 즉위를 하려고 왕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날(785년 음1월13일),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내린 폭우로 물이 불어난 알천을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시간에 왕궁에 있던 상대등 김경신이 왕좌를 꿰어차고 나서,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였다. 그가 제 38대 원성왕이다. 후일(822년3월)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왕위를 도둑 맞았다는 이유로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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