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21)
보스톤코리아  2023-05-22, 11:34:31 
886년, 제49대 헌강왕이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김요金嶢가 채 두 살이 되지도 않아서, 왕의 동생인 김황이 왕위를 이으니 그가 제50대 정강왕이다. 정강왕의 출생년 기록이 없어서 몇 살에 즉위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형 헌강왕이 862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에 동생인 김황의 출생 역시 그 이후가 분명하다. 864년 경에 출생하였다면, 정강왕은 24세 무렵에 즉위하였다. 그는 1년 가량 왕위에 있다가 병사하였는데, 형 헌강왕이 사망한 1년 후 같은 날인 음력 7월5일 사망하였다. 그는 짧은 치세로 인하여 아무런 업적이 없다. 다만 진흥왕 때부터 치루어 오던 국가적인 불교 행사의 하나인 백고좌의 강의를 듣기 위해 887년 1월에 황룡사로 행차하였다는 것과 동년동월에 한주漢州의 이찬(2등급) 김요金堯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고 처형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정강왕의 왕후에 대한 기록도 없고, 물론 자녀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의 유언으로 보아 자녀가 없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정강왕은 김요의 난을 평정한 후, 그해 5월에 병석에 누워서, “내 병이 위급하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행이도 사자嗣子가 없으나 나의 누이 만曼은 천자가 명예하고 골상이 장부와 같으니 경들은 옛날 선덕, 진덕의 고사를 의방하여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음력 7월5일 사망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차기 왕위는 여동생인 김만金曼에게로 이어졌다. 그녀가 신라의 세 여왕 중의 한 명인 제51대 진성여왕이다. 
진성여왕 김만, 그녀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마지막 여왕이다. 김만은 화랑의 수장인 국선 김응렴의 딸이다. 응렴이 헌안왕의 사위로 발탁되면서 그를 이어 제48대 경문왕이 되었다. 김만의 어머니는 문의왕후 또는 차비인 정화부인이라는 기록이 전한다. 경문왕의 왕비 문의와 차비 정화는 모두 제47대 헌안왕의 딸이다. 헌안왕은 ‘비록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가 있지만 본받을 만하지 않다’ 고 하면서 왕위를 딸에게 넘기기 보다는 사위에게로 잇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헌안왕의 의지와는 다르게 경문왕 김응렴에게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짧은 치세를 거치면서 그만 왕통은 끊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장남 김정이 제49대 헌강왕으로 즉위했지만 24세 무렵에 사망하였다. 헌강왕은 적자가 없었고, 서자 김요가 있었지만 채 2살이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차기는 동생 김황이 제50대 정강왕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정강왕은 병석에서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를 참고하여 누이동생 김만에게로 왕위를 잇게 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래서 김만이887년7월에 진성여왕으로 즉위하였다. 한편 경문왕의 장녀이자 김만의 언니인 김명金明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하지만 구체적인 행적은 찾을 수 없다. 
제27대 선덕여왕과 제51대 진성여왕의 즉위 배경을 비교해 보면 물론 상이한 면이 많지만 공통점도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차기를 이을 왕족이 ‘멸족’ 되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라는 일찍이 골품를 유지하기 위하여 근친혼은 물론 심지어 남매가 결혼하면서 성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제26대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는 사위인 용수/용춘에게로 왕통을 이으려고도 하였지만 결국 딸 덕만에게로 이었다. 그녀가 선덕여왕이다. 한편 용수와 용춘도 진지왕의 아들로 성골이었지만, 진지왕이 폐위되면서 아마도 족강이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용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이 진골인 것으로 보아 용수와 용춘은 진골임이 틀림없다. 김춘추는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제29대 무열왕이 되었는데 그가 첫 진골신분의 왕이다.
태종무열왕부터 제36대 혜공왕까지는 김춘추의 직계 후손들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혜공왕 재위시 일어난 ‘김지정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혜공왕은 시혜되었고, 왕의 후손도 없었다. 그래서 차기 왕은 김지정의 난을 진압한 김양상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선덕왕이다. 분명한 것은 혜공왕이 시혜가 되었는데, 삼국사기에는 난의 과정에서 살해당했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난은 김지정이 일으켰는데 혜공왕은 김양상, 김경신에 의해서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무열왕의 직계 왕통은 단절되었다. 차기는 화랑의19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흠순의 후손인 김양상이 제37대 왕위에 올랐고, 가야의 후손 김양상 또한 후손이 없이 사망하자, 국인들은 김주원(김춘추의 차남 김인문의 7세손)을 왕으로 옹립했고, 김주원은 즉위를 하려고 왕궁으로 향했지만 홍수로 불어난 알천閼川(현 북천, ‘가로막는 내’ 라는 뜻인데 김주원의 왕위를 가로 막고 말았다) 을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궁궐에 있던 상대등 김경신이 용상을 차지하였다. 그가 제38대 원성왕이다. 그로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는 모두 원성왕의 후손들이 왕위에 있었다. 제47대 헌안왕이 아들이 없어서 김응렴을 사위로 삼아 제48대 경문왕이 되었지만, 김응렴 역시 원성왕의 증손자인 제43대 희강왕 김제륭의 손자이다. 경문왕을 이어서 장남 김정이 헌강왕에 올랐고, 다음은 왕의 서자 김요가 너무 어려서 왕의 동생인 김황이 정강왕으로 즉위했다가 1년 후에 병사하자 여동생 김만이 진성여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녀도 후사없이 897년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866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왕위는 제49대 헌강왕의 서자인 김요에게로 갔고, 효공왕 김요 역시 912년 25,6세 무렵에 후사없이 죽었다. 왕족이 완전히 씨가 말라가고 있었고, 이미 한반도는 후삼국시대에 돌입하고 있었다. 차기 왕위는 헌강왕의 사위인 박경휘에게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www.korea.aks.ac.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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