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6세 풍월주風月主 진공眞功(1) |
보스톤코리아 2022-08-22, 11:37:48 |
제24대 진흥왕에게는 사도왕후 이외에도 많은 후궁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실이 가장 아름다웠으며 색도色道를 가장 잘했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미실은 일찍이 사다함(5세 풍월주)의 연인이었다. 561년 진흥왕의 명으로 이사부가 가야 정벌에 나섰을때, 사다함은 16세의 나이로 선봉에 서서 참전하기를 요청하였다. 진흥왕은 그가 너무 어리다고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다함은 몰래 자신을 따르는 화랑도를 거느리고 가서 야인들을 대파하였다.395) 이에 진흥왕은 사다함을 훌륭하게 여겨 그를 귀당비장貴幢碑將으로 삼아 이사부를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사다함은 정병精兵 5천을 지휘하여 가야군을 대파하였다. 승전고를 울리며 귀환한 사다함에게 왕은 많은 전답과 포로를 포상하였다(그는 전답은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포로는 모두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그러나 사다함 곁에는 전리품보다도 더 소중했던 연인 미실이 없었다. 미실은 이미 세종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세종은 진흥왕의 이부동복의 아우이다. 미실의 아름다움에 빠진 진흥왕은 동생 세종을 변방으로 내보내고 미실을 후궁으로 삼았다. 당시 풍월주는 세종이었지만, 그가 변방에서 국방에 전념하고 있었으니, 화랑도는 미실이 원화가 되어 이끌었다. 이무렵 진흥왕과 미실의 사이에서는 두 명의 공주와 아들이 태어났다. 그들이 반야般若공주와 난야蘭若공주이고, 아들은 수종전군壽宗殿君이다. 572년, 진흥왕의 장남 동륜태자가 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풀려고 월담을 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396) 진흥왕은 태자의 종인들을 조사하게 되었고, 그들의 입에서 동륜과 함께 어색을 하며 돌아다닌 금륜(동륜의 친동생, 후에 진지왕), 미생(미실의 동생, 10세 풍월주) 등 여러명이 흘러 나왔다. 뿐만 아니라 미실의 추행醜行도 밝혀지고 있었다. 즉 동륜태자는 미실과도 통정을 하였고, 그 부적절한 관계를 끊으려고 미실은 동생 미생에게 부탁하여 동륜과 함께 다른 여자들을 어색漁色하게 하였다. 결국 진흥왕의 의심은 확대되었고, 동륜태자와 무분별하게 어울려 다니면서 색사를 일삼은 모든 종족宗族과 낭도들을 벌주려고 하였다. 이에 미실은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통곡하며 궁을 나갔다. 이때 사도왕후(미실의 이모이다)가 진흥왕에게 “어찌 천한 무리들의 어지러운 말로 총첩의 은혜를 빼앗고 죽은 아들의 혼령을 아프게 하려 합니까?” 라고 간하여 한때 격노하여 큰 옥사를 일으키려 했던 진흥왕은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라는 조칙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미실은 떠나고 없었다. 진흥왕은 곧 미실이 없는 옆자리가 허전했다. 그 때 미실은 변방에서 돌아온 남편 세종과 함께 해궁海宮(바닷가인지 냇가나 연못 주변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에서 살고 있었다. 진흥왕은 아들 수종을 본다는 핑계로 해궁을 자주 찾았고, 결국 미실을 다시 궁으로 데려와 전주殿主로 삼았다. 미실이 해궁으로 갈 무렵 수종이 아주 어려서 데리고 갔다는 기록으로 보아, 수종은 571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수종이 호린과 혼인하여 사린을 낳았다. 그리고 사린이 호명好明과 결혼하여 진공眞功을 낳았다. 즉 26세 풍월주 진공의 증조부가 진흥왕이다. 진공의 조모 호린은 14세 풍월주 김호림의 누이로 부모가 복승공과 송화공주이다.397) 그리고 진공의 어머니 호명은 원래 임종공林宗公의 첩이었는데, 사린이 임종의 대사大舍로 있으면서 호명과 사통하여 딸을 낳게 되었다. 그러자 임종이 호명을 사린의 처로 삼게 하였고, 곧 진공이 태어났다. 임종은 ‘무림거사’ 김호림(14세 풍월주)과 김유신(15세 풍월주), 알천(상대등), 술종(대등, 죽지랑竹旨郞의 아버지), 염장(17세 풍월주), 보종(16세 풍월주)과 함께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경주 남산에서 자적하면서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자문(화백회의)하였다. 395) 화랑세기 5세풍월주 사다함조에 기록된 야녀野女, 야인野人 등이 어느 집단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왜와 관계가 있는 집단으로 보여지며, 아마도 그들은 가야 지배 세력들로 부터 통제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이종욱 역주해 인용). 396) 화랑세기(11세 풍월주 하종공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보명궁주가 태자의 연모를 받았으나,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자는 이에 장사壯士 수인과 더불어 궁의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궁주가 미실과 더불어 왕의 총애를 다툴 수 없음을 알고 감히 태자를 힘써 거부하지 않아 기롱짓거리하게 되었다. 그 이후 태자가 매일 밤마다 넘어 들어왔다. 이레 째 밤에 태자가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 들어가다가 큰 개에게 물렸다. 궁주가 안고 궁중으로 들어갔는데, 동틀 무렵 죽었다’ 572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397) 복승공의 부모는 산종과 사도미이다. 산종의 부모는 제21대 비처왕과 벽화이다. 사도미의 부모는 제23대 법흥왕과 사룡이다. 호린의 어머니 송화공주의 부모는 박영실과 지소태후이다. 곧 진흥왕과 세종 그리고 송화는 모두 지소의 자식들이지만 아버지는 입종, 이사부, 박영실로 모두 다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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