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4세 풍월주風月主 천광공天光公(14) |
보스톤코리아 2022-06-30, 15:53:52 |
제 48대 경문왕은 헌안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이어 받았다. 아들이 없었던 헌안왕은 딸만 둘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왕위를 잇지 않고 남자로 잇기 위하여, 왕이 될 인물을 선택하려고 모든 왕족과 귀족들을 임해전으로 모이게 하여 화랑도의 국선인 김응렴을 사위로 ‘낙점’ 하였다. 그리고 두 딸 중에서 한 명을 배필로 선택하라고 김응렴에게 하명하였다. 김응렴은 못생긴 장녀 문의공주와 미녀인 차녀 정화공주를 두고 고심하다가, 흥륜사의 승려/또는 화랑의 우두머리(다른 두 인물이 아니라 동일인일 개연성이 크다)의 조언을 받아드려, 장녀 문의공주와 혼인하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선택권’ 은 헌안왕에게로 넘겼다. 헌안왕은 장녀 문의와 김응렴을 혼인시켜 차기 왕위를 김응렴에게로 물려주기로 하고 4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김응렴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아름다운 차녀 정화공주도 후비로 맞이하였다. 경문왕은 왕비 문의왕후와 장남 김정金晸과 장녀 김명金明을 낳았다. 그리고 후비 정화부인과는 차남 김황金晃과 차녀 김만金曼을 낳았다. 경문왕은 화랑도와 승려들의 세력을 기반으로 비교적 왕권을 견고히 하였다. 그리고 재위 15년째인 875년에 사망하였다. 차기 왕위는 장남인 김정에게로 이어졌다. 그가 제49대 헌강왕이다. 헌강왕 재위기간에는 부왕 경문왕 치세에 비해 자연재해가 적었고 또한 아버지가 안정시킨 강한 왕권 덕분에 잠시나마 ‘태평성대’ 를 맞이하였다. 그래서인지 ‘월성에서 동해까지 집과 담장이 연이어 있었으며,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풍악과 노래소리가 길에 끊이질 않았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웠다’ 고 삼국유사(제2권 기이)에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헌강왕이 용의 아들인 처용處容을 만나는 내용인데, 삼국유사에는 그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때에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나가 놀다가 바야흐로 돌아가려 했다.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은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시어 이를 풀어야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칙명을 내려 용을 위해 그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했다. 왕명이 내려지자 구름이 개이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로 말미암아 개운포라 이름하였다. 동해의 용은 기뻐하여 이에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풍악을 연주하였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수레를 따라 서울로 들어와 정사를 도왔는데 이름은 처용處容이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처용이 역신疫神을 감복시킨 이야기, 즉 아내가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데도 노래와 춤을 추며 물러난, 곧 처용가와 처용무가 등장한다. <왕이 아름다운 여인을 처용에게 아내로 주어 그의 생각을 잡아두려 했으며 또한 급간의 벼슬을 내렸다. 그 처가 매우 아름다워 역신이 그녀를 흠모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함께 잤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다. 노래는 이렇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는 내 것이다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이때에 역신이 형체를 들어내어 처용 앞에 무릅을 꿇고 말하기를, “제가 공의 아내를 탐내어 지금 그녀를 범했습니다. 공이 이를 보고도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로는 공의 형용形容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이 처용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향가 중의 한 수이다.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387) 가 전하고, 균여전에 11수388) 가 전한다. 그 외에도 화랑세기에는 사다함이 가야 정벌에 출정할 때 연인 미실이 부른 ‘풍랑가’ 와 사다함이 그 전쟁에서 돌아오니 이미 세종의 아내가 된 미실을 보고 부른 ‘청조가’ 두 수가 전한다. 그 밖에 고려 제16대왕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와 신라의 만신가万身歌도 향가로 본다. 387) 삼국유사에 실린 14수의 향가는 다음과 같다. 서동요薯童謠, 혜성가彗星歌, 풍요風謠, 원왕생가願往生歌,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헌화가獻花歌, 원가怨歌, 도솔가, 안민가安民歌, 제망매가祭亡妹歌,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우적가遇賊歌 그리고 처용가處容歌이다. 388) 승려 균여대사가 지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로 예경제불가, 칭찬여래가, 광수공양가, 참회업장가, 수희공덕가, 청천법륜가, 청불왕생가, 상수불학가, 항순중생가, 보현회향가, 그리고 총결무진가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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