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26
화랑세기花郞世紀, 8세 풍월주風月主 문노文弩(16)
보스톤코리아  2018-05-07, 10:47:21 
때는 진지왕의 마지막 치세년인 579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진흥왕의 차남으로 태어난 진지왕, 그의 휘는 사륜(또는 금륜)이다. 그는 형 동륜태자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마폭을 풀려고 월담을 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는 바람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진흥왕이 죽은 후 진흥왕비 사도태후와 미실의 정략으로 미실을 왕비로 책봉한다는 조건하에 왕위에 올려졌다. 하지만 그는 미실을 왕비로 책봉하지 않았다. 만 3년 왕위에 있으면서 쌓은 업적도 별로 없이 정사政事는 돌보지 않고 정사情事에만 몰두하다가 폐위당했다. 즉위년인 576년 8월 부터 이듬해까지 친정을 하였지만 577년 부터 579년 폐위 당할때 까지는 상대등으로 있던 거칠부가 대리청정을 하였다. 결국 허울좋은 왕좌에만 앉아 있다가 폐위당하고 난뒤 1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즉위한 지 4년이 되던 해에 정사가 어지럽고 문란하여 국인國人들이 폐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도화녀와의 사랑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한다. 진지왕이 폐위되기 직전에 도화녀를 후궁으로 삼으려다 그녀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2년 후 남편이 죽은뒤(이 때는 이미 진지왕도 죽고 없었다) 진지왕의 혼령이 나타나 둘이 관계를 맺었고, 이 후 도화녀는 비형량을 낳았다. 비형은 진평왕대에 관리로 등용되었다(자세한 내용은 삼국유사 권1, 기이2, 도화녀 비형량 참조). 한편 삼국사기에는 진지왕이 자연사 한것 같이 기록되어 있다. 

579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왕궁에서는 사도태후와 미실이 주동이 되어서 진흥왕의 이부동복 아우인 세종전군 그리고 사도태후의 오라비 노리부 등의 세력을 이끌고 ‘정난황음’에 빠진 사도태후의 차남 진지왕을 몰아내고 장손 김백정(진평왕, 동륜의 장남)을 왕위에 올리던 무렵이었다(즉 정치세력면에서 본다면 동륜계가 사륜계를 밀어내고 왕권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권력의 추는 멈추지 않기에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치고 나서 왕위에 오르는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이다). 

이런 정변을 계획하고 있었던 사도태후와 미실은 문노의 힘이 필요하였다. 당시 국선화랑의 수장으로 많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있던 문노, 그의 협조는 절대적이었다. 우군友群은 아니더라도 적군敵群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또한 세종전군에게 충성하는 그의 의리는 신뢰할 수 있었지만, 보다 확실하게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6두품인 ‘노총각’ 문노를 윤궁에게 장가 들이는 일이었다. 윤궁은 과부였지만 황종의 딸로 진골의 신분이었다. 무엇보다 문노와 윤궁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윤궁은 몇가지 ‘의롭지 못한’ 것으로 고심하면서 심경을 비보랑에게 토로하였고 비보는 그 내용을 문노에게 전했다. 비보랑으로 부터 전갈을 받은 문노는 윤궁의 말이 옳다면서 그 다섯가지의 의롭지 못한 것들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후 ‘매파媒婆’인 미실과 세종전군의 주선으로 그들은 미실의 궁에서 맞선을 보았다. 화랑세기에 그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비보가 돌아와 공에게 말했다. 공이 말하기를 ‘낭주의 말이 옳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했다. 이 때에 진종眞宗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네 가지 의義의 문제도 사라졌다. 공이 장차 크게 기용되려하자 윤궁의 뜻이 자못 기울었다. 이에 공과 더불어 미실의 궁에서 서로 보았다. 공이 말하기를 “우리 낭주가 아니면 선모仙母는 없으니, 내가 국선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했다. 그러자 윤궁이 말하기를 “내가 군君을 그리워한 지 오래되어 창자가 이미 끊어졌습니다. 비록 골骨을 더럽힌다고 해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선모의 귀함입니까?” 했다. 공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에게 국선이 영예롭다고 하나, 나는 스스로 선모의 영예를 가집니다” 했다. 윤궁은 이에 공에게 몸을 허락하여 3자 3녀를 낳았다. 대강大剛 충강充剛 금강金剛이라 했다.]   

많은 풍월주들이 10대 후반이나 20대에 취임했는데, 문노는 41세에 취임했다. 그리고 풍월주의 부인을 화주라고 칭하는데 문노의 부인 윤궁은 선모로 불렸다. 이렇게 사도태후와 미실은 ‘황음무도’한 진지왕을 폐위할때 문노로 하여금 화랑도의 수장이 되어 군권을 쥔 노리부를 따르게하여 거사를 성공하였다. 노리부는 상대등이 되었고 문노는 582년까지 8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제26대 왕으로 진평왕이 12세에 즉위하였다(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그의 출생연도가 없는데 화랑세기에는 567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미실이 늙어서 왕후가 되지는 못했지만 진평왕을 색공으로 모시면서 그녀는 진흥왕과 동륜태자 그리고 진지왕에게도 색공을 했기에 할아버지로 부터 삼대왕에 걸쳐 색공을 하였다. 신라는 법흥왕대 부터 불교를 숭상하여 진평왕이 태어나면서  석가모니의 가족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진평왕은 백정으로 석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마야, 그리고 동생들은 석가의 삼촌들인 백반과 국반의 이름을 그대로 본따 지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라에서는 석가가 태어나지 않았다. 진평왕은 다만 딸 둘(셋 또는 넷)만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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