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얼리스>: 미국 연극계의 샛별 박지해의 "비길 데 없는" 수작 |
독자기고 - 전승희 (보스턴 칼리지 교수) |
보스톤코리아 2017-05-22, 12:11:20 |
젊은 한국계 미국인 극작가인 박지해 (Jiehae Park)의 최근작<피얼리스 (Peerless)>는 2015년 예일 레퍼토리 극단에 의한 초연 이후 전미연극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현재 보스톤 시내에서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는 수작이다. 아시아계 쌍동이 여고생인 엠(M)과 엘(L)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최근 격화되고 있는 명문 대학 입학 경쟁이라는 주제를 블랙코미디의 형식에 담아 극단적 경쟁이 야기하는 인간적 비용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극중 엠과 엘은 “그 대학”이라고만 지칭되는 최고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노력을 장기적으로 기울여 왔다. 완벽한 학교성적, 풍부한 과외활동을 통해 명문대학 지원의 기본조건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지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부 소도시로 이사했고, 쌍동이간의 경쟁을 줄이고 “가족 우선선발”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 엘이 한 학년을 늦추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엠은 “그 대학”의 조기입학자 명단에서 누락되고 대신 미국 원주민 혈통을 1/16 물려받은 디(D)가 합격한다. 즉 엠과 엘의 입장에서 디는 그들이 모든 것을 걸고 꿈꾸고 노력해 온 목표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장애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장애물과 마주한 인물이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황 타개에 나선다면? 작품은 바로 이렇게 디라는 인물이 제시하는 난관을 극복하고 “그 대학”에의 입학을 성취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 엠과 엘의 야심찬 행동과 그런 행동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결과를 독특하게 정제화된 이야기 속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제시를 통해 대입사정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차별철폐제도(Affirmative Action)”가 안고 있는 문제나 미국내 인종차별은 물론 교육과 삶의 목적에 대한 일반적인 성찰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쓸 때 야망과 배신의 주제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암시를 얻었다고 하는데, 추상적인 주제의 유사성이 눈에 띄지만, 작품의 소재나 스타일은 독특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단순한 알파벳으로 표현되고, 지역이나 학교 등의 이름, 주인공들의 민족적 배경 등이 누락되며, 어른이 부재한데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과장법(Hyperbole)에 기초해 일종의 원형을 보여주는 문제극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넘치는 대화와, 기발한 인물과 사건 및 배경의 설정, 그리고 그런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는 빠른 전개로 처음부터 관중을 강하게 사로잡는 흡입력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막을 가르지 않은 90분의 공연이지만 반전과 반전이 이어지며 의외로 막을 내리는 후반부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90분은 15분처럼 재빨리 흘러가, 청소년기의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을 작품이다. 스티븐 보가트 연출로 컴패니 원 극단에서 무대에 올린 이번 보스톤 공연은 단순화한 의상과 소품, 차가운 색깔과 모난 형태를 활용한 단순화된 무대장치 등을 통해 작품의 원형적 성격을 잘 살렸다. 또한 주인공인 엠과 엘의 역을 맡은 킴 클라즈너와 클로이 린, 샌님같은 디와 디의 동생의 역을 맡은 제임스 웩슬러, 더티 걸과 프레피 걸의 역을 맡은 브레나 피츠제랄드, 엠의 남자친구 역을 맡은 카다즈 베넷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연기로 작품을 빛냈다. 이 공연과 관련해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술과 사회변혁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18년 전통의 컴패니 원 극단이 이번 공연에 관객의 능력에 따라 지불하는 제도를 도입해 극단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스톤 공립도서관 지하의 라브(Rabb) 홀에서 올려지고 있는 이번 공연은 5월 27일까지 목, 토, 일에 총 7차례가 남아 있으니 아직 관람하지 못한 이들은 서둘러 좌석을 확보하기를 권한다. 끝으로, 한반도 분단과 관련된 재미동포 가족의 기이한 체험을 다룬 박지해의 또다른 작품으로 현재 오레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공연중인 <해나와 무시무시한 정자(Hannah and the Dread Gazebo)>도 곧 보스톤 지역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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