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 v. Bell (1927): 광기에 지배당한 지성 2. |
보스톤코리아 2017-02-17, 14:07:06 |
(지난 칼럼에 이어) 지난 주에 소개한 우생학적 단종법 (강제 불임시술법)은 국가기관이 임의적으로 태어나도 좋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단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출산에 대한 선택의 권리를 공공의 이름으로 박탈했던, 미국의 흑역사였다. 그리고 이는 여러 모로 나찌의 반유대 정책 혹은 홀로코스트를 ‘정당화’ 했던 논리를 연상시킨다. 가령 나찌 독일이 1935년 통과시킨 뉘른베르크법은 독일인과 유대인간의 결혼 및 성관계를 금지시켰는데, ‘우수한 인종인 아리안의 혈통을 유대인의 혈통으로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라는 논리로 이를 정당화했었다. 점차로 뉘른베르크 법의 적용 대상은 확대되었고, 간질환자도 동성애자도, 그리고 집시도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로 존재하면 안되는 이들로 낙인찍힌 채 대량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나찌의 광기가 무르익었던 방식이다. “삼대에 걸친 저능은 출산을 금지해야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못 박음으로써, 주정부가 “정신박약” 판정을 내린 여성 캐리 벅에 대해 강제 불임 시술을 시행하고 더 나아가 우생학에 기반한 단종법 시행에 “합헌”의 날개를 달아준 Buck v. Bell 판결 역시 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기는 했지만, 주류 사회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쥐어박아도 찍소리 못할 것 같은)’ 어떤 약자들에게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휘둘렀던 광기였다. Buck v. Bell 케이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반전과 뒷얘기들이 있다. 1924년 버지니아주 의회는 불임시술법을 비교적 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법이 헌법상 명시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가 다분했던 것이 사실이며, 지난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이 법의 강력한 지지자들조차도 불임시술법이 특정 인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조항을 못박은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법의 입안자인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오브리 스트로드는, 1924년 의회에서 통과한 단종법을 실제로 시행하기에 앞서 만약 강제불임시술 대상자가 될 누군가가 주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걸 경우에 대해 미리 대법원의 판단이라는 방어막을 쳐놓는 방법을 고안했다. 강제 불임시술 대상자가 실제로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그 소송에서 패소하고, 항소후 다시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시나리오였다. 단종법 지지자 입장에서 이 테스트 케이스가 성공하려면, 강제불임시술 대상자가 ‘정신박약’임이 ‘입증’되어야 했다. 또한 1924년 단종법을 지지할 수 있도록 정신박약은 후대로 유전되는 것이어야했고,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임시술이 헌법에 못박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했다. 이 목적에 비추어 엄마와 딸이 한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는데다가 출산 경험이 있는 캐리 벅은 3대에 걸친 정신 박약 스토리를 만들기에 꽤나 적합한 법정 실험 도구였다. 스트로드는 캐리 벅에게 난관절제술을 통한 불임 시술을 받으면 수용소에서 나가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또한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트로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법정에 선 온갖 증인들이 (대개는 캐리 벅을 잘 알지도 못하거나 돕스 가족 측인) 캐리 벅의 지적 무능함과 정신적, 도덕적 문제를 증언했고, 전문가들은 캐리의 어머니와 그녀의 딸도 정신 박약이므로 캐리가 또 출산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고, 그리고 법원은 “…그들의 저능으로 인해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의 출산을 막는 것이 전 세계에게 더 낫다. 삼대의 저능은 출산을 금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라고 함으로써 강제 불임시술이 마치 당사자를 위해 필요한 것처럼 둔갑시켰다. 버지니아의 단종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얻어낸 덕에, 다른 주의 유사한 법들도 광기의 고속질주를 시작했다. 정신 박약이니 성적 문란이니 어떤 이름을 붙이건 간에,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개인의 몸에 대한 권리를 제한할 근거는 없다. 게다가 당시 법원이 판단하던 ‘정신박약’이라는 진단 자체가 헛점 투성이였다. 수많은 증인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증언하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수용소 시설에서 나온 캐리는 지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생활을 영위했다. 이미 7개월에 ‘뒤로 가는’ 성향을 보여 정신 박약의 기질이 있다고 판명되었던 그녀의 딸 비비안은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었다. 하지만 캐리의 남은 인생은 가난과 불운으로 점철되었고, 비비안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는 수만명의 캐리 벅이 있었다. 단종법이라는 광기의 주체가 배움이 짧거나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는 사실은 한 번쯤 곱씹어봐야할 것 같다. 당시 학자들 중에는 범죄나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유전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혁신주의자’로 분류되는 사회 개혁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우생학을 노골적으로 옹호했다. 교양과 학식으로 무장했던 이들의 기획하에 짜여진 법정드라마의 클라이막스였던 벅 대 벨 케이스에 등장하는 법률가들 역시 법을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광기에 사로잡힌 지성은 예나 지금이나, 괴물이고 재앙이다.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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