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39 |
보스톤코리아 2016-08-01, 11:23:55 |
3세 풍월주 모랑공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 그래서인지 화랑세기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진흥왕16년(555년) 모랑공이 비사벌比斯伐을 여행(주행천하)하다가 병을 얻어서 객사하였다. 비사벌은 현재의 창녕 지역이며 진흥왕의 순수비의 하나인 창녕비에는 이 지역을 비자벌比子伐로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벌써 555년에 창녕지역이 신라의 영토로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랑도의 무리가 주행천하周行天下하다가 창녕지역에 이르러 갑자기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모랑을 잃게되자,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을 풍월주로 받들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이화랑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총애를 받아서 항상 궁중에 있으면서 침신의 역할을 하였기에 사양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낭도들의 간청과 지소태후의 허락으로 이화랑은 4세 풍월주에 올랐다. 그리고 임신한 지소태후가 만호낭주를 출산한 뒤 지소의 명으로 화랑도의 무리를 이끌고 전국의 군현郡縣을 순행하였다. 555년 까지의 사서의 기록이나 금석문에는 지방에 현縣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없는데 이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할 당시에는 지방에 현이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사서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화랑도들은 단순히 절경의 명산이나 수려한 대천을 찾아서 심신을 수련하고 기예만을 연마한 것이 아니라 왕실의 특명을 받아 군현을 순행하면서 지방 관리들에게 업무지침 하달이나 지방의 행정과 군사의 동태를 파악하여 왕실에 보고한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옥진궁주의 누이는 금진인데 또한 위공의 딸이다. 법흥대왕을 섬겼으나 아들이 없었다. 대왕이 죽자 문상蚊上에 머물러 살았다. 남모가 처음 해를 당했을 때, 낭도들이 받들고자 했으나 태후가 허락하지 않았다. 구리지仇利知공과 몰래 정을 통하여 토함공을 낳았는데, 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일찍 낭적郎籍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때 부제로 삼았다. 태후가 궁중에 불러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비량숙공比梁叔公보다 못하지 않고 아름다움은 벽모碧母보다 나으니, 인재를 얻었다고 축하할 만하다” 했다. 공 또한 토함공을 심히 사랑하여 기거를 반드시 함께 했다. 금진낭주가 고맙게 여겨 공을 축복했다.] 위공은 이화랑의 아버지 위화랑이고 1세 풍월주이다. 위화랑의 정처는 준실부인인데 위화랑은 오도부인과도 정을 통하여 옥진와 금진를 낳았다. 이 오도부인은 제21대 비처왕(소지왕)과 선혜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도부인이 낳은 두 딸 옥진과 금진 모두 법흥왕의 후궁이었으나 옥진은 나중에 박영실과 결혼하였다. 금진궁주는 법흥왕이 죽은 후 문천蚊川 상류지역에서 살았다. 원화 준정이 남모공주와 서로의 미모를 질투하고 더 많은 낭도들을 차지하여 원화의 위세를 세우려다가 준정이 남모를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낭도들이 금진을 원화로 받들고자 했지만 지소태후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위화랑공을 초대 풍월주로 하는 화랑도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모기강’ 상류에 홀로 살던 금진은 구리지공과 정을 통하였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들이 토함공과 사다함공이다. 구리지는 아버지가 비량공인데 그는 벽화부인177)의 미모가 눈앞에 아른거려 잠을 못이루면서 만날 궁리를 하다가 그녀가 가는 측간에서 기다리곤 하였다. 결국 그들은 측간에서 사통을 하였고 이어지는 통정으로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구리지’이다. 뒷간에서 태어났기에 그의 이름도 구리지라고 보는 견해가 학계의 중론이다. 이 구리지가 금진과 통정을 하여 낳은 아들이 토함이다. 토함은 어릴때 부터 수려한 외모에 출중함이 지소태후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일찍이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그를 부제로 삼을 것을 명했으며 할아버지 비량에 버금가는 장부임을 칭찬하였다. 또한 그의 수려함은 할머니 벽화에게서 왔다고 칭찬하면서 인재를 얻었다고 기뻐하였다. 화랑도 중에서도 군계일학같은 토함공은 풍월주 이화랑의 사랑도 풍성히 받으면서 화랑도를 함께 이끌었다. 토함공은 이화랑의 조카이다. 즉 아버지 위화랑의 손자이다. 그리고 토함의 동생 사다함은 미실의 연인으로 미실과 함께 신라 향가 2수를 남겼다. 177) 제21대 비처왕의 후궁으로 비처왕이 당시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에 반해 경주에서 영주까지 평민의 복장으로 여러번 찾아갔다가 결국 왕궁으로 데려와서 후궁으로 삼은 여인이다. 벽화을 데려올 때 그녀의 어머니도 함께 데려와서 후궁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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