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초여름 날
보스톤코리아  2016-06-27, 11:51:02 
  정녕  여름이다. 싱그러운 냄새가 진동한다. 지난 봄에 태어난 오리 새끼들도 무럭무럭 자란다. 여름은 모든 새끼들을 기른다. 자연의 신비함일 진저. 

  아낙네란 말을 사전에서 다시 찾았다. ‘남의 집 부녀자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통속적인 말이라 그런가. 유행가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내게는 꽤 정감어린 말이다. 소설 토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심하게 각색했다. 

‘ 아낙이 글을 배웠다면, 시인이 됐을 것이요. 붓을 쥐어 주었다면, 사임당 신씨가 되었을 터. 남자로 태어나, 말을 타고 창을 들었다면 앞장 섰을 게고, 부모묘소에 벌초 할때마다 머리카락에 까지 울음이 맺히고, 가족을 하늘로 생각하는 그렇지요. 복이 많은 이땅의 아낙이요.’

  옛적엔 아이를 낳을 적에 산파가 동원되었다. 산부인과 병원에 가는 건 꿈도 못꾸던 시절이다. 산파를 부를 수 없을 적엔, 집에서 혼자 낳아야 했다. 이 이야기는 내 어머니에게 들었다. 산일이 가까운 아낙도 농번기엔 밭에 김을 매러 가야 했단다. 일을 마친 늦은 오후, 아낙이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이를 안고 돌아 온단다. 일하는 중에, 산기를 느꼈을 것이고, 나무 그늘에 찾아 앉아 혼자 아이를 낳은 거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에 내가 넘어갔다. ‘집에 돌아온 아낙은 아이를 뉘여 놓고, 소죽을 끓인다.’ 산후조리니 뭐 이런것 없는 거다. 아, ‘조선의 아낙’이여.

   신경림 시인의 시이다. 여름날이다. 푸르고 싱그럽다.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신경림, 여름날)
 
  시인은 그 사이를  못참고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애를 안은 젊은 아낙은 짜증 한번 내지 않는다. 여전히 밝은 아낙은 용감하다. 애를 엉차 들쳐 업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고 냇물가로 뚜벅이며 걸어갔다. 냇물에 첨벙 발을 담궜다. 그냥 건너겠다는 거다. 차안에 몇사람은 눈을 동그랐게 떴다. 놀라 잠에서 깨어난 노인에게 뒤돌아 눈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아아, 건강하기도 하다. 아아, 아름답기도 하다. 초여름 유월처럼 싱싱하다. 이래저래 싱그럽다는 말이다. 젊은 아낙처럼 튼튼하고 푸르른 거다. 그가 ‘대한의 아낙’인게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호칭인게냐. 

= 아낙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박세리를 떠올렸다. 그게 벌써 이십년 가까이 됐다. 그때 티비로 그녀의 모습을 지켜 봤다. 검게 그을린 종아리는 굵었고 강인해 보였다. 진정한 미녀의 다리모습 아니던가. 역시 박세리는 강했고, 튼튼했으며, 장한 국민 여동생이고 아낙이었다. 그런데 박세리는 시집갔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모양이다. 한동안 산아제한이네 뭐네 하더니, 세월이 바뀌어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 독려한다. 하지만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단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게 왠간해야 말이지.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인생이 덜 바쁜건 아닐게다. 인생에서 세월은 어느 시기건 누구에게건, 진공으로 남겨 두지 않으니 말이다. 그게 먼지바람이건, 꽃바람이건 채워지게 마련이다. 바람이 분다. 버드나무 냄새가 난다.

(이 그림은 인터넷에 떠 도는 흑백사진을 모사했음을 밝힌다. 사진작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삼성노트 스마트폰으로 그렸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누가복음 2:1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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