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1. 리틀 빅혼 강 전투와 카스터 (2)
보스톤코리아  2016-02-08, 11:08:13 
또 금광 발견이 문제였다 (계속)
1875년 12월 3일 인디언담당 국장인 스미스(Edward Smith)는 다음해 1월말까지 지정된 주거지역 밖에 거주하는 인디언은 모두 주거지역 안으로 들어가도록 명령하고 이를 어기는 인디언에 대하여는 가차 없이 공격하여 강제로 끌고 오겠다고 발표하였다. 1876년 2월 7일에는 미국의 전쟁부가 관구사령관인 쉐리든 장군에게 적대적인 인디언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고 그 다음날 쉐리든은 그의 부하들에게 미친 말의 숙영지인 파우더강과 빅혼강 유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실 1월 혹한 속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트래보이(travois; 두 개의 장대를 A자 형태로 틀에 붙들어 매어 개나 말이 끌게 하는 운반 용구)에 태워서 먼 거리를 이동하여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3월이 되자 주거지역에 들어가 있던 샤이엔과 수우 인디언들 중 상당수가 들소나 영양을 사냥하기 위하여 파우더강 지류 쪽으로 가서 거기 있던 적대적 인디언(지정된 거주지역 입주를 거부하고 있는 인디언)과 합류하였다. 3월 17일 미군 기병대가 이 숙영지를 습격하여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1000마리 이상의 말을 끌고 가버렸다. 그러나 그날 밤중에 인디언들은 미군의 숙영지에 몰래 들어가서 빼앗겼던 말들을 다시 찾아왔다.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잃어버린 인디언들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미친 말의 인디언캠프로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다. 봄이 되면서 곧 미군의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미친 말은 자기를 따르는 인디언 부족 모두를 텅 강 유역에 있던 훙크파파 지파의 추장 앉아있는 소(Sitting Bull)의 캠프 근처로 옮겼다. 날이 풀리자 많은 젊은 인디언들이 사냥하기 위하여 거주지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여 로즈버드강가에 있던 인디언들과 합류하였다. 이 무렵 미군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하여 세 방향에서 인디언 밀집지역으로 진군해오고 있었다.

시팅불과 크레이지 호스에 의한 카스터 부대의 전멸
1876년 6월 16일 샤이엔 사냥꾼이 로즈버드(Rosebud)계곡에서 야영중인 크룩 장군(George R. Crook)의 부대를 발견했다. 이튿날 앉아있는 소, 미친 말, 그리고 두 달(Two Moons)의 지휘 하에 천명의 수우족과 샤이엔족 전사가 미군부대를 공격하였다. ‘로즈버드 전투’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 숫자는 불분명하지만 인디언 측보다는 미군 측이 더 큰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미군은 주거지역을 벗어나 있는 인디언들을 잡아 주거지역으로 다 몰아넣기 위하여 세 갈래의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세 부대중 하나가 바로 크룩 중장의 부대로서 그의 부대는 페터만 요새에서 출발하여 보즈만 도로를 따라 파우더강을 향하여 북쪽으로 진군하던 중이었고, 기본(John Gibbon) 대령이 지휘하는 부대는 몬태나의 엘리스 요새(Fort Ellis)를 출발하여 동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테리(Alfred Terry) 준장이 이끄는 부대로서 여기에는 카스터의 제7기병대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다코타의 링컨 요새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행군해 왔다.

그러나 이 세 갈래 전략은 출발부터 차질을 빗게 되었다. 크룩의 부대가 로즈버드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어 증원군을 추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전력손실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작전수행을 중단하고 기지로 돌아가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대로 된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이라 기본과 테리의 부대는 크룩의 부대가 일격을 당한 사실도 모른 채 인디언의 빅혼 강가 야영마을로 계속 진군하였다. 테리는 로즈버드 강어귀에 이르러서는 카스터에게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로즈버드 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진군해 갈 것을 명령하였다. 

한편 로즈버드 강 전투가 끝나자 인디언 연합부족들은 풀이 더욱 기름지고 사냥감이 풍부한 리틀 빅혼강 쪽으로 이동하여 강의 서쪽 둑을 따라 약 5km에 걸쳐 인디언 티피촌을 이루었다. 대체로 수천 명의 젊은 전사를 포함하여 만 명 이상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팅불이 이끄는 훙크파파족이 언제나 마을의 입구나 끄트머리에 위치하였듯이 이번에도 강 상류 제일 남쪽에 자리를 잡았고 북쪽 끝에는 샤이엔족이 있었다. 그 사이에 산 아르크 지파(Sans Arc), 미네콘주 지파(Minneconjou), 오글라라 지파(Oglala), 브룰레 지파(Brule)가 들어와 있었다. 전설적 전투영웅 미친 말도 오글라라 지파 캠프에 머물고 있었다.

6월 25일 새벽에 카스터 부대와 동행했던 인디언 용병 정찰대가 약 24km 떨어져 있는 리틀 빅혼 강가에서 인디언마을을 발견하여 카스터에게 보고하였다. 카스터는 지체하지 않고 그날 낮 시간 동안에 바로 기습 공격하기로 정하고 부대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인디언 캠프를 포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카스터는 전투보다는 인디언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해서 모두 다 잡아서 거주지역으로 보내는 데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한 소부대는 카스터가 직접 지휘하고 나머지 두 소부대는 각각 리노(Marcus Reno) 소령과 벤틴(Frederick Benteen) 대위가 맡았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송동호 종합로펌 주간 법률 칼럼 - [이민법] 취업이민 2순위와 3순위 (EB2 & EB3) 2016.02.13
안녕하세요 송동호 종합로펌입니다.  이민 문제 만큼 미국 내 한국 분들의 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
한담객설閑談客說: 젊은 느티나무 2016.02.08
  날이 추워졌다. 찬바람도 불었다. 오대호를 지난 캐나다발發  북서풍 일게다. 바람은 얼음된 눈덩이는 데려가지 못했다.  방한복防寒服..
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1. 리틀 빅혼 강 전투와 카스터 (2) 2016.02.08
또 금광 발견이 문제였다 (계속)1875년 12월 3일 인디언담당 국장인 스미스(Edward Smith)는 다음해 1월말까지 지정된 주거지역 밖에 거주하는 인디언..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16 2016.02.08
화랑세기花郞世紀, 1세 풍월주風月主 위화랑魏花郞(4)
妄(망) 2016.02.08
“그러므로 남을 망단(妄斷) 또는 판단(判斷)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망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니 망단하는 네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