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지붕에 올라가다
보스톤코리아  2015-04-18, 16:20:54 
길어도 너무 길었다. 길다 길다 해도 이런 겨울은 처음이다. 이제야 간다 간다 하던 겨울이 완전히 퇴각했지 싶다. 하지만 선발대만 보낸 봄은  본진이 도착하려면 한두 주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개나리 꽃망울이 아직도 너무 작다. 꽃 피는 걸 기다리다 목빠지겠다.  
  지붕에 올라갔다. 아내의 성화에 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막힌 거터를 뚫어야 했다. 빗물 떨어져 소리를 듣는 것도 낭만이고 재미였다. 하지만, 넘치는 빗물에 창문이며, 집 벽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나무 창틀은 들쑤셔 놓았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꽃이 피거든 올라 갈거라 했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없었던 거다. 후둘거리는 다리를 주체 할 수 없었다. 미끄러 질라, 헛다리 짚을라 조심에 조심을 다해 사다리를 탔다.  기다시피 엎드려 앞지붕과 뒷지붕을 헤집고 다녔다.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되었는데,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한숨 돌리기로 했다. 내리 쬐는 이른 봄이 지붕을 덥히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지붕 위는 고즈넉했고, 조용한 동네에 차소리도 멀었다. 따뜻한 지붕 위에 몸을 뉘였다. 쳐다본 하늘은 유난히 파랬던가. 하늘이 가까워 그런건가 극성스럽게 푸르다.  코발트 빛 하늘과 따슨 봄은 후둘거리던 다리를 울렁이는 가슴으로 바꿔 주었다. 집 뒷마당에 개나리는 아직 피지 않았다. 철쭉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다. 내려다보는 철쭉과 개나리도 또 달리 즐기는 맛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꽃 피기 전이라 해도 지붕 위는 색다른 감동으로 출렁였다. 광화문 글판 글이다. 

‘꽃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함민복,  '마흔 번째 봄'에서, 광화문 글판)

  보스톤으로 이사 오기 전이다. 집을 팔아야 했다. 집을 팔기 위해서는 낡은 지붕을 갈아야 했다. 인부를 불렀고, 인부는 보조 한 사람과 같이 일을 시작했다. 그날따라 나는 집안에 있었다. 쿵 하는 육중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나 했으니, 당연히 뛰쳐 나갔다. 역시나 보조하는 이가 지붕에서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포치에 떨어졌다. 큰 부상은 없는 듯했다.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젊은 보조는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얼굴에 만들었다. 시니어의 역정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한 시간이나 흘렀나. 쿵 하는 낯설지 않은 소리가 다시 났다. 덜컹, 내 심장도 같이 떨어지는 듯 싶었다. 뛰쳐 나갔고, 이번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엔 시니어 인부가 떨어졌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말이다. 조심하라고 그렇게 훈육하더니만, 스스로 떨어졌으니 입이 있어도 뭐라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 다음날 되었다. 지붕 수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조수되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다시 지붕에 올라가기가 무섭다 했다. 남들은 동백꽃 떨어지는 모양을 보고 아련하단다. 그 조수양반은 추락하던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일게다. 내가 지붕에 올라가 보니 내려다 보는 마당은 장난이 아니었으니 알겠더라. 이맘떄 즈음이던가. 벚꽃잎이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면 가슴이 울렁인다. 한국엔 벚꽃이 이미 지기 시작하는 모양인데, 보스톤엔 지기는 커녕 아직 꽃망울도 구경하지 못했다. 더뎌도 한참 더디다. 이번주엔 꽃망울이라도 보여줄겐가. 철쭉이 피면, 지붕 위에서 내려다 보기로 했다.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시더라’ (사도행전 10: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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