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1920년대 그리고 상실의 시대
보스톤코리아  2015-01-19, 11:34:01 
고등학교 영어 수업 교재로 한 번쯤 읽게 되는 필독 소설 중에F. Scott Fitzgerald의 1925년작 <The Great Gatsby>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닥 문학적이지 못한 필자가 이 소설을 알게 된 것은 (미국사에 대해서도 이 소설의 진짜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오래전 과거의) 우연이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를 읽다가 <위대한 개츠비>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의기투합’하는 대목에서,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기에…. 라는 궁금증이 그 독특한 제목 덕에 머릿속에 남아있었던 것. 그러나 정작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집어들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스윽 들춰보고 별다른 감동 없이 내려놓았다. 최상류층의 향락을 위한 파티, 비극적 결말을 가진 허무한 사랑, 그게 뭐가 어쨌다는거지? 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놀랍게도 미국 역사를 통해 1920년대를 조금 알고나니, <위대한 개츠비>가 제대로 보였다. 어릴적 깊이 있게 읽을 능력이 없었고, 그리하여 별 감흥이 없었던 이 작품은 사실 사치와 향락의 시대이자 음울함이 도사리고 있던 시대, 금주법의 시대이자 광란의 시대, 세계 제 1차 대전 후의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표방되는  ‘미국주의’의 시대이자 위선의 시대, 풍요의 시대이자 대공황을 향해 질주하고 있던 불안한 시대였던 1920년대의 본질을 관통하는 작품이었다. 

95년 전 오늘, 1920년 1월 16일. 1917년 12월 의회를 통과하고 1919년 1월 비준 절차가 끝난 수정헌법 18조 “금주법 (Prohibition)”이 효력을 갖기 시작한 날이다. 금주법은 1933년 수정헌법 21조에 의해 금주법이 철회되는 1933년 12월까지 존속했다. 이 기간 동안 주류의 생산, 유통, 수입 등은 금지되었다. 당연히 상업적 양조장과 증류 공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개인이 집에서 소량으로 과일주등을 담그는 것은 예외였다) 

금주법의 시기에 사람들은 금주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아마 가난한 노동자 계급들은 금주 “당했다.” 금주법을 통과시킨 여러 이유 중에는 노동자들의 지나친 음주가 생산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식의 ‘백인 중산층/자본가’ 시각에서 형성된 개혁주의 동기도 있었으니, 그 관점에서 보자면 금주법은 성공한 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주법이 시행되기 직전, 상류층들은 미리 술을 “사재기”해두었다. 금주법이 알콜의 섭취까지 불법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개인 창고에 비싼 술을 대량으로 쟁여둔 사람들이 음주할 권리를 박탈당하진 않았다. 심지어 금주법이 수정헌법으로 입법되는 시기 대통령이었던 윌슨도 그런 사적인 주류 창고를 소유했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하딩은 자신의 주류창고를 취임 직후 백악관으로 옮겨왔다. 

금주법 시대의 진정한 아이러니는 범죄의 증가였다. 1920년 당시, 은밀히 술을 홀짝일 수 있는 스피키지 (Speakeasy; 비밀  주류 판매점)가 등장하기도 했고, 캐나다나 멕시코 등 인접국가에서 만들어진 주류를 은밀히 들여와 판매하는 주류 밀수업, 밀주를 만들어 파는 부트리거 (Bootlegger; 밀주업자) 등이 음지에서 번성을 했던 탓이다. 금주법당시의 주류관련 산업이란 음지에서 번창하는 산업이었던 탓에 당연히 그 높은 잇권을 둘러싼 각종 조직 범죄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대주택을 소유하고, 매 주말마다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하는 큰 파티를 열고 수 백명의 사람들을 초대하는 재력가다. 그 어마어마한 부의 정체는 무성한 소문과 선망의 원천이기도 했다. 사실 개츠비가 주말마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까닭은 단 하나, 사랑했던 과거 연인 데이지와의 재회를 노리기 때문이었다. 데이지는 5년 전, 개츠비를 버리고 돈 많은 운동선수 출신의 바람둥이 톰과 결혼해서 개츠비의 집 근방 또 다른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던 것. 어쨌거나 소설 속 개츠비는 바로 주류 밀매업을 통해 짧은 기간동안 막대한 재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소설은 개츠비의 쓸쓸한 장례식으로 끝났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고자 황금의 제국을 건설했으나, 과거를 돌이키지도 못했고, 매주 열리던 파티의 수많은 손님 중에 개츠비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1920년대는, 금주법 덕에 부수적으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지만, 불법적인듯 불법 아닌 방식으로 부를 쌓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 1920년대라는 광란의 시대는 누군가에게는 풍요의 시대였는데, 정부가 나서서 “낙수효과 (Trickle Down)” 운운하며 부자들과 기업들의 세금을 알아서 감면해주었다. 반면 ‘미국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들 계급의 목소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었고, 남동부 유럽 출신 이민과 아시아계 이민을 제한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소비 여력이 감소했고, 이민의 감소로 인해 미국 전체의 구매력은 더더욱 떨어졌다. 각종혜택을 보던 미국의 생산은 결국 소비 지출 감소로 인한 과잉 생산으로, 그리고 대공황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번영”의 환상에 젖어있었다.   

1920년대는 광란의 시대였고, 풍요의 시대였지만 사실은 상실의 시대였다. (실제로 이 시기 문학의 경향은 1차 세계 대전후의 미국의 황금 만능주의와 위선 환멸을 느끼는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으로 대표된다). 
갑의 횡포에 대한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요즘, 갑질의 원천은 대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게 씁쓸한 요즘, 자꾸 미국의 1920년대가 생각이 난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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