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2013-12-09, 15:17:35 |
세상일은 뒤집혀야 재미있다. 영화는 마지막 반전이 흥미를 키운다. 스포츠는 역전승이 가장 짜릿하다. 삶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스톤은 반전의 도시다. 보스톤에 살면서 그것을 아직 피부로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면 보스톤의 삶을 만끽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증거다.
보스톤 연고 프로 풋볼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매번 뒤집는 경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팀이다. 올해 7점 이하로 승부가 난 게 무려 10경기, 이중 8경기를 승리했다. 소위 팬들의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한다. 지난달 21일 NFL 최강팀으로 꼽히는 덴버 브랑코스를 꺾었던 역전승은 백미였다. 초반 연이은 실책으로 전반전까지 24-0으로 뒤져있었다. 그러나 후반들어 34점을 몰아 득점하며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연장에서 패트리어츠는 필드골을 성공, 37대 34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쿼터백들의 인생도 흥미롭다. 패트리어츠의 탐 브래디와 브랑코스 패이튼 매닝은 현시대 최고 쿼터백으로 꼽힌다. 정상에 있는 이들이지만 걸어온 길은 달랐다. 패이튼 매닝은 대학시절부터 NFL급 쿼터백으로 꼽히며 1순위로 프로에 드레프트 됐다. 반면 브래디는 2000년도 드레프트에서 6라운드 199번째 선수로 뽑혔다. 지금은 패이튼 매닝과 나란히 특급 쿼터백이다. 하지만 그는 매닝과의 대결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런 그가 또 한번의 역전승을 일궈냈으니 삶도 경기도 반전이었다.
지난해 꼴찌 팀에서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보스톤 레드삭스의 승리도 극적이었다. 레드삭스가 우승 과정 중 가장 힘든 경기를 치뤘던 것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였다. 1차전에서 1대 0으로 무너졌다. 2차전도 다르지 않았다. 올해 최고의 투수 마크 서져가 선발로 나서 5와 3분의 1이닝 동안 퍼팩트 게임으로 레드삭스 타선을 틀어 막았다. 그러나 5-1로 뒤지던 8회말 데이비드 오티즈의 동점 만루홈런이 모든 흐름을 바꿔 버렸다.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레드삭스는 우승까지 일궈냈다.
데이비드 오티즈는 당대 레드삭스의 최고의 클러치 히터다. 그러나 그의 시작부터 각광받지는 못했다. 도미니칸 리퍼블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네소타 트윈즈로 트레이드 됐다. 그곳에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부상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그는 2002년 시즌 후 방출됐다. 갈곳 없던 그를 보스톤 레드삭스가 대타로 쓸 요량으로 헐값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2003년부터 그의 반전이 시작됐다. 2004년엔 끝내기 홈런, 끝내기 안타로 레드삭스를 3게임을 내주고 4연속 승리를 거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팀으로 만들었다.
지난 11월 끝난 보스톤 시장 선거도 역전승으로 마무리 됐다. 마틴 월시 시장 당선자는 선거 내내 여론조사에서 같은 아이리쉬 출신인 존 카널리 후보에게 뒤져 있었다. 하지만 점차 격차를 좁혀가더니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일부는 노조의 힘으로 당선됐다고 평가한다. 그가 일궈온 삶의 과정이 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그는 1950년대 이민 온 아일랜드계 부모사이에서 태어나 도체스터에서 자랐다. 7살 겨울 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 다음해 봄을 보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젊었을 때 알코올 중독일 정도로 술을 마셔댔다. 1990년 술집에서 다툼으로 인해 다리에 총상까지 입었다. 95년 이래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그는 아직도 중독자들의 심리치료 모임인 <알코올 어나니머스>에 참석하고 있다.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와 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라나서 변호사를 하다 보스톤 광역구 시의원을 지낸 카널리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인생인 것이다. 3루에서 출발하는 카널리보다는 알코올 중독자 마틴 월시에게 사람들의 마음이 얹어진 것이다.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한 그가 서민과 소수민족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그에 대한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은 꿈을 꾸어도 좋다는 반증이다. 어려움을 성공으로 만들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반전이야말로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미다. 자본주의가 300년이나 된 미국사회 특히 보스톤에서 이 같은 반전과 역전을 목격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여전히 간직해도 된다는 보증서 같은 것일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떠도는 <8살의 꿈>이란 노래가 있다. “나는 부산 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거다”. 자본주의 60년의 한국사회에서 이런 왜곡된 반전이 가슴 아프게 한다. 본질보다는 치장이란 껍데기가 중요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실력보단 학위가 중요하니 가짜 논문이 판을 친다. 과연 이런 한국에서 알코올중독자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을까.
12월 달력이 한장 밖에 남지 않았다.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무언가 삶의 반전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한 해가 간다는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충분히 꿈꿀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게 자산이다. 여기는 반전의 도시, 아직도 개천에서 용나는 보스톤이다. 보스톤은 미용사를 하다가 하버드대에 입학하는 반전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곳 아닌가.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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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
ct |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 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읽으시길 기원합니다. 재목이 '젊은이어, 보스톤은 반전의 도시요 인생의 꿈을 꿀수있는 도시다!' 라고 부른다면.... 50대도 꿈구고 있으니.... 젊은이의 양지를 지탱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케트린 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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