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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spora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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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6-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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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부고를 들고 여름이 당도했다. 삶의 갈림길에서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로 인해The Road Not Taken이 남겨진다.  필연적인 선택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했던 도전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색의 여운을 정리하려 한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연재될 내용은 사실적 기록과 당시의 회의 또는 행사 전후에 벌어졌던 일련의 에피소드를 필자의 사유로 담담히 풀어낼 생각이다. 29대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국승구 총회장을 보좌하며 기획조정실장으로 함께한 총연 언저리에서 느낀 소회,  임기가 끝나고 합류한 미연방총한인회 정명훈 총회장과의 허물없는 대화, 그리고  총연의 청사진이 중심이 될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한 미주현직한인회장협의회 로라 전, 김수철, 정 테레사 의장과 운영위원으로 이어진 긴 시간을 돌아보고자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250만 동포를 대변하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때로는 손톱 발톱을 무장한 염장질로 대척에 서기도 했다. 


미주총연 안팎에서 벌어졌던 과정에서 아쉬움으로 남은 편린들을 회고록으로 엮는 것은 한인회장께(어떤 한인회장? 이름이 필요)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심경에서 출발했다. 필자와 소통하고 토론한 많은 회장님들의 면면이 실명으로 나열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함께한 회장님(누구? 여럿?)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생각으로 설전했던 분들도 관점이 다를 뿐, 나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존재를 증명했던 분들이다. 29대 미주총연 국승구 총회장,  김병직 총회장,  서정일 이사장, 이제는 여운으로만 남은 세 세력이 각기 다른 생각으로 한 울타리치고 해를 넘기며 논쟁했으니 오죽했을까? 나는 절감했다. 감정은 이성을 통제하지 못했다. 마을 이장도 논두렁 정기는 타고 나야 한다. 하물며 산 넘고 물 건너온 50개 주 한인회장이 미주 총연의 구성원이었으니 오죽했을까?


총연은 오랜 시간 수직구조의 편재였으나 나는 수평 구도로 보았다. 수직 구도는 공직 사회가 만든 것이다. 민간 자율 단체는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한인회장은 예의상 선후배는 있을 수 있으나 직급으로 서열 정하고 갑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자율 단체인 한인회의 명징한 정체성이다. 한인회장은 갑질의 요소인 보수와 근속에 대한 베네핏이 없다. 활동 과정에 청사를 방문하고 국정 고위 책임자를 만나 사진 찍고 밥 먹다 보면, 어깨에 잔뜩 뽕 들어간 한인회장을 보게 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거창한 행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자율 단체의 본분을 망각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불특정 단체인 한인회는 천차만별의 재능 기부로 함께하고 있다. 해서 획일화된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 간 약속, 회칙뿐이다. 개별 단체가 회칙이 있는 이유는 그 단체의 정체성을 나열함과 동시에 단체로 공존하기 위해 신상필벌을 시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수시로 회칙을 바꾸거나, 방치하면 회칙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미주총연이 법적 분쟁과 내부 분열로 우환에 시달린 이유가 이 물렁물렁한 회칙 때문이다. 선공후사를 내세우지만 속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울타리로 삼는다.(회칙을?) 이는 인식 차이와 다른 것이다. 서로의 견해차는 발전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설전은 그도 아니었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인생 수업에서 우리는 반목할 이유와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필자도 감정이 이성을 앞서는 관계로 그러지 못했다. 여러 개의 총연 단톡방은 연일 손가락 부대가 만들어 내는 우수마발(쓸데없는것들)로 난무했다. 딱히, 곤마를 살리기 위한 묘수도 아니었다.


이 기회를 빌려 대척에 섰던 (무순) 서정일, 이경로, 김병직, 김만중, 장대현, 김재동 외 여러 회장들께도 미안함을 느낀다. 설전으로 득 될 실익은 없으나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면 이성은 마비되고 엽전 의식만 남아 후회된다.


개는 기르고 종은 부린다

미주 총연이 편제에 맞게 한인회장들을 도구로 쓰려면, 명확한 업무나 지시를 통해 규정되어야 제 기능을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같은 생각으로 오랜 시간 소통하며 격려와 응원해 주신 (무순) 국선, 이규철, 변재성, 조석산, 김격, 김유진, 윤정배, 장익군, 이성배, 알라나 이, 박상원, 안건복, 김도수 회장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이 외에도 많은 분이 있으나 글을 풀어가면서 거론할 생각이다. 


29대가 7여 년의 분규를 끝내고 통합을 시작할 즈음 마주한 미주 총연은 춘추전국(春秋戰國)의 혼란한 축소판 같았다. 도원결의 같은 세 분의 통합 합의문. 그런데 그 합의는 결의형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용은 합의로 출발했으나 서명 날인 한 분들의 오합(무질서)은 폐문(문을 걸어 잠금)에 가까웠다. 기형적인 두 분의 총회장과 이사장, 당사자들이야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객관적으로 겉 매듭부터 허술했다. 내부에서는 이질적인 세력 다툼이 실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그즈음 국승구 총회장이 승인한 지도부가 라스베가스 호텔에서 공식 행사를 위한 첫 줌 미팅이 꾸려지고 있었다. 김만중 위원장의 회의 진행과 참여한 회장의 면면은 오랜 시간 연합회에서 존재 증명 받은 분들이어서 회의는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나는 이날의 첫 만남을 이렇게 남겼다.


백가쟁명(百家争鸣) !!

미주 한인 사회는 지난 반세기 수많은 도전과 변화를 겪어 왔다. 29대 미주 총연의 현실은 이민 1세대의 헌신과 현세대의 도약이 맞물리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도부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산적한 문제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합의 정당성과 법적인 문제, 모국인 한국 조야의 관계 설정, 회칙의 오남용, 윤리위원회 권위, 일은 안 하고 직함만 받는 부작위 등 할 일은 산적한데 허망한 뉴스피크(Newspeak, 신조어)만 생산하고 있었다.


대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총회장이라는 자리가 녹록지 않아 보였다. 겉으로는 10여 년의 분규를 막 끝내고 세력 간 화합으로 취임한 것이었으나 취임 초기 국승구, 김병직 두 총회장과 서정일 이사장 간 세력 구도가 예고라도 하듯 지뢰처럼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또 다른 미주총연 정명훈 총회장!!


이런 흐름 속에서 29대 총연을 이끌게 된 국승구 총회장의 취임은 단순한 리더십 교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변화의 요구가 가장 거칠게 일고 있던 시기에 공동체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온전한 전결권 없이 대내외로 양분된 두 총회장은 서로가 무거운 짐이었다. 국승구 총회장은 오랜 기간 연합회 활동으로 쌓아온 단단한 실무 경륜을 가지고 미주 한인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세대 간의 간극, 지역 불균형, 그리고 한인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 확대라는 숙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고, 29대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총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와 협력으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는 강했으나 모멘텀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총회장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는 포용과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연의 성격상 오랜 시간 지역 회장과 연합회 활동으로 점철된 분들이라 서로 상대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논쟁은 가벼운 약속 대련 같은 것이었으나 아니었다. 연일, 오래 누적된 앙금을 물 위로 띄우는 일에 치열하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설전이었다. 그런데 이 설전은 집단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집단이 조용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란 때로는 없는 말도 만들어 소란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형용모순은 늘 상존한다. 미주 한인 사회는 지역마다 규모와 특성이 크게 다르다. 어떤 곳은 많은 한인 인구로 하여 활발한 경제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또 다른 곳은 인구 감소와 조직 약화로 어려움을 겪는다. 국 총회장은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각 지역이 서로의 장점은 공유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네트워크형 한인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총연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소통하고 이슈를 찾아내는 실사구시

또한 차세대의 참여 확대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인 청년의 적극적인 참여에 달려 있다. 국 총회장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으나 원활하지는 못했다. 이는 한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미 조야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지만, 일 추진 과정은 내부의 파열음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필자는 지루한 내부 암투를 치르면서 조직을 이대로 두면, 분란은 끝없이 이어진다고 보았다. 하여 임원 단톡방에 기획조정실장의 공문으로 기조실 위원 다섯 분을 모시고 총연의 기조를 바꾸는 혁신을 단행하려 했다. 그러나 포스팅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장익군회장께서 며칠 보류하면, 일괄 발표한다는 전언이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은 흐지부지되어버렸다. 따라서 조직의 편제나 구조를 손대는 일은 어려웠다. 안타까웠다. 알고 보면 구조를 바꾸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떤 일을 어떻게 차고 나갈지에 대한 생각 없는 것이 문제였다.


가령, 총연 내부의 갈등 구조 조정, 편제, 지역 간 이해관계의 충돌, 그리고 외부 한인 사회와의 관계 설정 등은 우선시할 일이었으나, 두 분 총회장께 숙제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럼에도 국승구 총회장이 보여 온 소통 방식과 조정 능력은 이러한 난제를 풀어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갈등을 피하기보다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는 스타일이다. 이는 공동체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총회장의 리더십이 이끄는 방향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미주 한인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고민을 해야 했다. 비전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한인회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했으나 순조롭지 못했다.


공동체는 리더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있을 때 공동체는 대동단결로 더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다.

29대가 끝날 무렵 백서라도 남겨 반면교사로 삼고자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을 두 갈래 길을 걸었는데 허전하다. 앞으로 양분된 미주총연 두 갈래로 나뉘게 된 연원과 파열음도 짚어볼 생각이다. 이어 미주현직한인회장협의회 4대에 걸친 줌 미팅과 회의 그리고 행사 과정에서 총연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고 비견되는 두 분 서정일, 정명훈 총회장을 중재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결론 없이 끝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문제는 미주총연에서 파생된 문제로 풀려면 충분히 풀 수 있었다. 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조직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기록만이 다음 세대의 실수를 줄이고,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다. 29대 미주 총연의 경험은 한 조직의 내부 갈등을 넘어 diaspora 공동체가 어떤 구조와 문화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필자의 고민이다. 이 회고록은 그 질문에 대한 물음이자 다음 세대가 또다시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경고를 위한 메시지다. 

다음호에 계속


※ 첨언/ 본 칼럼은 필자가 민간 자율 단체인 미주한인회 언저리에서 활동하며 겪은 일들을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정리해 큰 타이틀 「diaspora의 이방인」 아래 각 편의 소제목을 붙여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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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천 

미주한인회총연합회 29대 기획조정실장

미연방총한인회 기획수석

미주현직한인회장협의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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