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보스턴 질레트 구장 공연, 그 담장 너머까지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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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8-13 17:47본문
지난 8월 5일 6일, 보스턴 남쪽 Foxboro의 Gillette Stadium에서 BTS 아리랑 공연이 있었습니다. 완전체 컴백 이후 보스턴 지역 첫 공연이었고, 공연장 전체가 보라색으로 물드는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관이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끝난 후 정리하는 과정까지 보고 나서 습관처럼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스폰서 명단에서 눈에 띄는 이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BIg Hit Music, HYBE, SAMSUNG, VISA, 여기까지는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라이브네이션(Live Nation)"이라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것도 그냥 브랜드 후원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공연 4일전부터 보이던 수십대의 장비트럭에 붙어있던 사인의 주인공이었습니다. Live Nation은 이번 투어를 실제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회사,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애를 먹으며 접속했던 티켓 사이트 티켓매스터(Ticketmaster)의 모회사였습니다. 후원사가 아니라, 이 공연을 돈 받고 만드는 쪽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회사, 요즘 좀 많이 시끄럽습니다. 라이브네이션 과 티켓매스터는 2010년 합병한 이후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입니다. 공연 기획, 공연장 운영, 티켓 판매까지 한 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쥐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 때문에 아티스트들은 종속될 수 밖에 없고 미국 정부와도 독점문제로 오랫동안 싸워왔습니다.
2024년 5월, 미국 법무부와 30개 주가 이 회사를 독점 혐의로 제소했습니다. 2026년 3월 재판 도중 법무부는 회사 분할 없이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33개 주는 소송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배심원단은 반독점법 위반 모든 항목에서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배상 규모를 정하는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이 와중에 BTS 투어는 이 회사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건드리는 케이스가 됐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티켓을 구하려는 인원이 실제 좌석 수의 15배에 달했고, 유럽에서는 한 팬이 6만 명을 제치고 티켓을 구했다는 후기가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런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슈가의 솔로투어 때는 프리세일에서만 수요가 폭발해 일반 판매 자체가 취소됐고,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LA 공연 때는 사이트가 다운되고 재판매 티켓이 수만 달러까지 치솟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티켓매스터의 대표적인 수익 모델 중 하나가 수요에 따라 가격이 실시간으로 오르는 '다이나믹 프라이싱'인데, BTS 콘서트는 이 방식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식팬클럽 사이트 Weverse에서 ARMY 멤버십 인증을 거친 사람들에게만 프리티켓을 판매하는 구조를 고수해왔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나 공연에서 수백 달러씩 가격이 치솟는 다이나믹 프라이싱 논란이 반복되는 것과 달리, BTS 공연에서는 이런 식의 가격 급등이 상대적으로 덜한 이유입니다. 티켓매스터 입장에서는 수요가 그렇게 넘쳐나는 공연에서 가격을 자유롭게 올릴 기회가 막혀 있는 셈이니, 자기들의 수익을 빼앗기는 듯한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즉 BTS가 투어를 돌 때마다, 티켓매스터의 시스템은 매번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리고 매번 삐걱거렸습니다.
그런데 티켓팅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번 투어와 거의 겹치는 시기에 또 하나의 논란이 터졌습니다.
7월 29일, BTS 멤버 전원이 각자 SNS에 같은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음반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배경은 여러분도 다들 아시듯이 그래미가 갑자기 'K팝을 포함한 아시아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했는데, 완전체로 돌아온 BTS에게 본상을 주지 않으려는 우회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래미 측은 최고경영자까지 나서서 아시아 팝 예술의 성취를 기리기 위한 부문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BTS의 보이콧 선언 직후, 그래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들의 대표 무대 영상들이 잇따라 사라졌습니다. 공식 유튜브에서는 멀쩡히 볼 수 있는 영상들이었습니다. 그래미 측은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보복성 조치 아니냐"는 의혹이 번졌습니다.
아미들의 반응도 빨랐습니다. SNS에서는 지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겠다"는 가사가 담긴 BTS의 곡 ‘에일리언’이 여러 나라에서 차트 1위에 오르며 화답했습니다.
이 모든 논란이 한창이던 8월 1일과 2일, BTS는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북미 투어의 첫 문을 열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RM은 히트곡 'MIC Drop' 무대 중 관중들에게 자신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이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우리는 우리노래만 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습니다. 그래미를 직접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팬들과 여러 외신은 이를 최근의 그래미 논쟁과 연결지어 해석했습니다. 논란에 정면으로 맞서서 반박하는 대신,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답하는 방식. 그게 이 투어가 스스로를 증명해온 태도였습니다.
그날 공연을 보면서 무대 위의 멤버들 못지않게 눈에 들어온 게 있었습니다. 공연 한참전부터 헤드셋을 끼고 무대 곳곳을 분주히 오가던 스태프들, 조명과 음향을 맞추고 카메라 동선을 체크하던 사람들.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던 댄싱팀들, 자세히 보니 그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건너온 젊은 스태프들이었습니다. 공연 스케줄을 따라 전세계를 같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몇만 명이 들어찬 이역만리 스타디움에서, 이 모든 조명과 사운드와 화면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는 무대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밤샘 준비와 손끝의 노력, 그 피, 땀, 눈물이 있었을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가 보는 3시간의 감동 뒤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묵묵히 그 무대를 지탱한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 모든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이 모든 배경을 알고 나서 질레트 스타디움의 그 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슈가가 소개될 때 터져 나온 함성, 완전체로 다시 선 무대, 그리고 그 위에서 흔들림 없이 이어지던 노래들. 티켓 한 장을 구하기 위한 전쟁 같았던 예매, 그 뒤에 숨어 있던 거대한 티켓팅 회사의 반독점 소송, 그리고 무대 중간 중간에 흘러나온 담담한 한마디까지. 이 모든 걸 알고 보니, 보스턴에서의 무대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시끄러운 것들은 시끄러운 대로 두고, 이들은 그냥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티켓매스터도, 그래미도, 결국은 오랜 세월 스스로 만들어놓은 견고한 시스템을 가진 거대조직들입니다. 그 시스템이 흔들리는 걸 반기는 쪽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으로 수익을 극대화해온 회사 입장에서는 팬클럽 인증만으로 티켓이 다 팔려나가는 그룹이 달갑지 않았을 거고, 그래미처럼 오랫동안 자신들의 기준으로 음악을 줄 세워온 곳 입장에서는 그 기준 바깥에서 이미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이 불편했을 겁니다. BTS는 그런 자리마다 계속 균열을 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지금까지 택해온 방식은 단순합니다. 팬들을 위해서만 노래하고 맞서 싸우기보다, 그저 더 좋은 음악을 들고 무대에 서는 것. 그 노래 하나로 각기 다른 언어와 지역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 보스턴의 그 밤에도 결국 남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노래였습니다. 이들을 흔들려는 것들이 무엇이든 이겨내며 BTS가 앞으로도 이렇게 음악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멋진 그룹으로 계속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성주영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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