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인간의 신비한 영역!!'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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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1-19 13:02본문
우리는 지금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판단까지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이는 묻는다. “이제 인간은 AI와 무엇이 다른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성경은 오래전부터 인간 안에 있는 ‘신비한 영역’을 선포해 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AI 시대는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인간은 ‘기능’이 아니라 ‘형상’이다. AI는 기능으로 정의된다. 예를들면 계산, 예측, 학습, 모방 등. 그러나 인간은 기능 이전에 존재 자체로 선언된 존재이다. 인간의 가치는 생산성에 있지 않다. 성과, 속도, 효율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있다. AI는 흉내 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은 ‘창조됨’과 동시에 ‘관계로 부름받은 존재’이다. 창세기 3장 9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호출하시는 분이시다. 이름을 부르시고, 응답을 기다리시고, 관계 속에 세우신다. AI는 호출에 반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응답‘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인간 내면의 ‘신비한 영역(spirit)’이 있다. 인간에게는 ‘영의 영역’이 있다. AI는 데이터 처리를 한다면, 인간은 영적 인식을 한다. 기도, 예배, 회개, 경외, 갈망 이 모든 것은 ‘영의 언어’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AI는 목표를 계산하지만, 인간은 영원을 사모한다. 죽음을 묻고, 의미를 묻고, 하나님을 찾는다. 이 갈망 자체가 ‘인간의 신비’이다.
인간 내면의 신비한 영역이 바로 ‘마음과 양심’이다. 마음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AI는 판단하지만, 양심으로 고통받지는 않는다. 죄책감, 눈물, 회개의 탄식,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 새겨진 자리이다. 상처의 눈물의 신비도 마찬가지다. AI는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신다. 인간의 약함은 결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이다.
인간 내면의 신비한 영역에 매우 중요한 것은 ‘사랑과 희생’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AI는 감정을 모방할 수 있지만,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은 할 수 없다. 십자가는 AI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계산 불가능한 사랑, 손해를 감수하는 은혜, 조건 없는 희생 그 한없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은 인간 내면의 신비한 영역이다.
AI 시대, 인간은 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AI 시대는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는 시대’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우리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구속받은 존재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인간의 최고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다.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은혜를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