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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역사학자, 남북분단의 원인 삼국시대 250년간 전쟁에서 찾아

김종선 로드아일랜드대 명예교수, 약 1,300쪽 저술에 평생 연구 담아

서구 한국학계에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잇는 거대한 파라다임 제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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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의 역사학자 김종선 로드아일랜드대 명예교수.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의 역사서적인 『신라왕조의 흥과쇠』를 정치와 경제, 인류, 종교, 그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저술했다
98세의 역사학자 김종선 로드아일랜드대 명예교수.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의 역사서적인 『신라왕조의 흥과쇠』를 정치와 경제, 인류, 종교, 그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저술했다

98세의 한인 미국 역사학자가 오늘날의 남북분단과 극단적 대립이 삼국시대의 오랜 전쟁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하는 등 평생의 연구를 한권의 저술에 담아 화제다. 지난 4년간 집필에 몰두했으며, 삼국시대부터 근 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저술을 출판할 예정이다. 


김종선 로드아일랜드대(University of Rhode Island·URI)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8월 21일 보스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해하려면 통일을 이룬 성과와 함께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 통일 뒤에도 남은 분열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약 1,300쪽 분량의 저술인 『신라왕조의 흥과쇠(The Rise and Fall of the Silla Kingdom)』는 이 문제에 천착한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그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종교와 인류학, 심리학을 더해 한국 사회의 분열에 관해 설명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그는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이 한반도 분단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사회 내부의 타협과 통합은 왜 실패했는지에 주목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약 250년간 싸우며 쌓은 적대감이 통일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았고, 그 역사적 유산이 후대의 분열과 갈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가 먼저 강조한 것은 삼국 모두가 강력한 국가였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이 쉽게 다른 나라를 제압하지 못한 채 공격과 후퇴, 동맹과 배신을 거듭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됐고, 상대를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여기는 감정도 깊어졌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전쟁도 감정의 골을 만드는데 무려 250년동안 전쟁이 이어졌다면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전쟁의 잔혹성은 극을 달했다.  서양사를 보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상대를 포로로 잡아 노동력으로 활용했으며, 장수나 왕을 잡으면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나타난 삼국 전쟁에서는 이 같은 사례는 거의 없으며, 수천명의 전쟁포로가 잡히면 목을 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사례로 백제 성왕의 죽음을 들었다.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숨진 뒤 신라가 그의 머리뼈를 북청이라는 관청의 계단 아래 묻었다는 기록이다. 이 내용은 『일본서기』에 전하며, 김 교수는 이를 패배한 상대를 죽음 이후에도 모욕하는 적대감의 표현이라 설명했다. 


642년 백제의 대야성 공격으로 김춘추의 딸과 사위 김품석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거론했다. 이들 부부의 유해가 백제의 감옥에 묻혔다는 기록 역시 양국 사이에 쌓인 원한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김품석 부부의 유해를 돌려받는 대가로 생포한 백제 장군 8명을 돌려보낸 기록도 있다. 극심한 적대관계에서도 협상과 교환, 약속의 이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갈등 속에서도 극적인 타협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이런 사건들을 전투의 승패나 영토 확장만으로 설명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증오와 복수심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가 전쟁포로의 처우와 종교적 세계관까지 연구한 이유다.


김 교수는 한국의 샤머니즘적 신앙도 이러한 적대감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그는 불행의 원인을 자신의 내면보다 외부의 악한 존재에서 찾는 사고방식을 한국 샤머니즘의 특징으로 해석했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인식과 오랜 전쟁 경험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책에서 분석했다.


신라는 삼국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는 통일의 이상을 내세웠지만, 김 교수는 실제 통합이 그 이상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당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패망한 나라 사람들의 원망이 깊어졌고, 통일 이후에도 이를 충분히 풀어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신라가 백제의 궁전을 파괴할 때 백제가 만든 예술 작품을 전부 짓밟아 버린 것, 또 궁궐 터를 파서 연못을 만들어 버린 것을 예로 들었다. 호남과 영남의 분열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역사가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그는 신라가 당의 힘을 이용한 ‘사대통일’에도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반감을 완화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등장을 들었다. 신라 말 농민의 불만과 반란을 지방 세력이 장악하는 과정에서 옛 나라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현상을, 통일 뒤에도 남아 있던 분열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고려와 조선이 각각 1천년 동안 통일왕조를 유지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4de8f393efb4b55926f4b09ec291a92_1788477843_0767.jpg김지하 시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책. 서문을 로드아일랜드 서양미술사 교수와 함께 썼다. 이 책으로 인해 연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 시절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인터뷰에는 김종선 교수와 윤희경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우측) 등이 함께 했다질문에 김교수는 국가가 하나의 왕조 아래 유지되는 것과 내부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답했다. 고려시대에도 옛 나라의 부흥을 내건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중앙에 권력과 부귀가 집중된 구조에서는 그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과 일본의 지방분권적 봉건제와 비교해 한국에서는 귀족들이 중앙의 관료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봤다. 왕조를 유지하는 중앙집권의 힘이 존재하는 동시에, 중앙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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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의식은 해방 이후 좌우 대립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전후 연합국의 점령을 겪은 오스트리아와 한국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공동의 정부를 만드는 타협에 주목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국가조약을 통해 주권을 회복했다. 


한국에서는 좌우의 극단적 대립 속에 중간에서 타협을 이끌 세력이 약했고, 외세의 영향과 내부 분열이 맞물리면서 분단이 굳어졌다고 그는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상대를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패거리’라는 말로 비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신라의 통일이 남긴 긍정적 의미도 강조했다. 강대국에 의존해야 했던 통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이후 독자적인 국가와 문화를 이어갈 기반을 마련한 공로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족적 자긍심을 세우려는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낮춰 본 시각에 맞서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자랑스러운 성취와 함께 전쟁의 잔혹성과 내부 갈등도 살펴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 제기가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낀다며, 자신의 연구가 여전히 학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구가 왕과 지배층뿐 아니라 노예와 농민 등 하층민을 향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국 고대국가의 노예와 농민』을 소개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국가 권력의 구조를 알려면 하층계급을 알아야 된다”는 그는 서양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며 접한 비교사적 방법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도 연구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생산방식과 권력구조를 분석하는 방법론에는 배울 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만큼 오래 지속된 학생운동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독재에 저항한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촛불집회, 한류의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근면성, 문화적 창조력 역시 오랜 역사 안에서 형성된 힘으로 해석했다.


분단을 넘어설 방향으로는 경제적 통합을 먼저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정치적 통합과 중립국가를 모색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강대국의 대립 속에서 한국 사회가 겪어온 제약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도 그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e4de8f393efb4b55926f4b09ec291a92_1788477878_861.jpg김 교수의 저서 『한국고대국가의 노예와 농민』. “이 책 이후 한국 고대국가에 노예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라졌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정말 흡족한 책이라고 덧붙였다이번 저술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수십 년에 걸친 공부를 종합한 작업이라고 답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부인은 최근 4년간 그가 집필에 몰두해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줄 정도였고, 한국 방문을 권해도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1928년 울산에서 태어나 1956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시애틀대(Seattle University)에서 정치학 학사,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동양학 석사와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1998년까지 33년간 로드아일랜드대에서 동북아시아 문명사를 가르쳤다.


1978년과 1991년에는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신라사를 연구했다. 신라의 사회경제 구조와 노비, 전쟁포로, 사회 통제의 종교적 배경 등에 관한 연구는 이번 저술의 바탕이 됐다.


98세 학자의 연구에 인공지능(AI)도 함께 했다. 김 교수는 AI를 활용해 원고의 표현을 다듬고 잘못 입력한 연도를 점검했으며, 한글 번역 과정에서도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AI가 문장을 매끄럽게 정리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자신의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국의 기존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도록 권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럴 때는 다시 설명해 고치도록 하거나 자신의 표현을 유지했다. 번역 과정에서도 잘못된 내용을 직접 수정했다고 밝혔다.


AI의 저술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구글 제미나이는 김 교수의 저술을 “서구 한국학계에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잇는 거대한 방법론적 파라다임을 제시하는 기념비적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대 신라의 ‘사회 통제 매커니즘’과 ‘미완의 통일’이 형성한 구조적  유산이 어떻게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 한국의 정치문화, 재벌체제, 극단적 파벌주의 및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는가를 단일한 이론적 아키텍처로 명쾌하게 입증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 역사에 관한 영문 저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평생의 연구를 영어로 집대성하고 한국사에 대한 객관적 고찰을 제시한 서적이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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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장명술 편집장 [email protected]
장명술은 보스톤코리아 발행인 겸 편집장이다. 2005년 보스톤코리아를 창간해 22년째 보스턴·뉴잉글랜드 한인사회의 뉴스를 취재·보도하고 있으며, 한인사회·정치·경제 분야를 주로 다룬다. 그가 이끄는 보스톤코리아는 2024년 미국 로컬 뉴스 지원 이니셔티브 프레스포워드(Press Forward)의 공모(Open Call) 지원 대상 매체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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