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전 독립전쟁 첫 대형 승전…영국군 철수의날이 중요한 이유
수백 명 모여 철수의 날 기념… “이날은 보스턴의 독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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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새벽 기자 작성일본문
영국군이 보스턴에서 철수한 지 250년이 되는 17일, 이베큐에이션데이(Evacuation day)에 수백 명의 시민과 재연단, 정치인, 전국 각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사우스보스턴 도체스터 하이츠에 모여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상징적 승리를 기념했다.
강한 바람이 몰아친 이날 행사장에는 대포와 소, 민병대 재연단, 조지 워싱턴 장군 역할을 맡은 기마 인물까지 등장해 1776년 3월의 역사적 순간을 되살렸다. 참석자들은 이곳이 단지 한 지역의 유적이 아니라 미국 혁명의 흐름을 바꾼 장소라고 입을 모았다.
1776년 3월 17일, 영국군과 충성파 약 1만1천 명이 보스턴을 떠난 사건은 독립전쟁에서 식민지군이 거둔 첫 번째 중대한 승리로 평가된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250년 전 도체스터 하이츠를 지킨 병사들의 용기와 인내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거듭 강조됐다.
모라 힐리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도체스터 하이츠 기념비 아래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 장소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어렵다”며 “이곳은 세상을 바꿨고, 모든 것을 바꾼 곳”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과 주 및 지방 정치인들, USS 컨스티튜션 승무원들까지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세인트 오거스틴 채플에서 오전 예배를 마친 뒤 텔레그래프 스트리트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정상까지 행진하며 철수의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제뷸런에서 온 라베카 클렘프는 자신이 웨스트퍼드 출신 대륙군 병사 제임스 버터필드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며 “내 조상들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도체스터 하이츠를 지켰던 이들을 기릴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영국군 철수는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이후 식민지군이 보스턴을 11개월 동안 포위한 끝에 이뤄졌다. 당시 영국군과 도시에 남은 주민들은 좁은 시내에 갇힌 채 식량과 연료, 생필품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올드 노스 처치를 운영하는 올드 노스 일루미네이티드의 대표 니키 스튜어트는 “이날은 보스턴의 독립기념일”이라며 “그 포위 기간 동안 보스턴에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고, 우리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륙군에게도 포위전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병사들은 긴 대치 속에서 피로와 좌절, 때로는 내부 갈등까지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단 하룻밤 사이 대포와 조립식 방어진지를 도체스터 하이츠로 끌어올리며 전세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미셸 우 보스턴 시장은 “그들에게는 이 언덕이 있었고, 그것을 활용할 용기와 결단력이 있었다”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조차 결국 선택지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 승리의 결정적 배경에는 헨리 녹스가 이끈 대담한 포병 수송 작전이 있었다. 당시 보스턴의 서점 주인이었던 녹스는 뉴욕주 포트 타이콘데로가에서 확보한 약 60톤의 포병 장비를 한겨울에 소와 말, 썰매를 동원해 약 300마일 떨어진 케임브리지까지 옮겼다. 그리고 이 장비는 1776년 3월 5일 아침, 도체스터 하이츠 정상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대포가 됐다.
영국군 사령관 윌리엄 하우 장군은 반란군이 하룻밤 사이 해낸 일이 자신들의 전군이 한 달 동안 해낸 것보다 많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체스터 하이츠에 대포가 배치되자 영국군 함대와 점령 중이던 보스턴 시내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게 됐고, 영국군의 위치는 순식간에 방어가 어려운 상태로 바뀌었다.
비영리단체 레볼루션 250의 의장이자 서폭대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앨리슨은 “대륙군은 도체스터 하이츠에서 자신들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행사는 세상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군은 이후 남은 7년의 전쟁 동안 다시는 보스턴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반면 매사추세츠는 독립전쟁 기간 내내 막대한 병력을 제공하며 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농부와 대장장이, 선원과 상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 제국의 군대에 맞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사우스보스턴 시민협회 회장 톰 맥그래스는 “공동의 목적 아래 뭉친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에드 플린 보스턴 시의원도 “참전용사이자 지역사회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 날은 나라의 역사와 참전용사들을 함께 기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세인트 패트릭데이와 겹친 이날 행사에는 축제 분위기도 감돌았지만, 그 바탕에는 평범한 이들의 희생과 결단이 만들어낸 비범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텍사스주 프리스코에서 온 크리스 더피는 “월폴에서 자랐고 역사학 학위도 있다”며 “이 사건은 보스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뉴턴에 사는 그의 누이 로라 더피는 “이 일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오리건주 코밸리스에서 온 73세 베스 램브라이트는 회의 일정에 앞서 이베큐에이션데이 행사를 보기 위해 며칠 먼저 보스턴을 찾았다. 메이플라워호 순례자의 후손이라고 밝힌 그는 “독립선언서는 최고의 이별 편지였다”며 “나는 조지 워싱턴이 영국 함대의 철수를 바라봤던 바로 그 근처에 서 있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볼루션 250의 대표 조너선 레인은 이날의 거센 바람을 가리키며 “도체스터 하이츠에 서면 항구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며 “1776년 3월, 이 지형은 식민지군의 편이었다”고 말했다.
행사 내내 보스턴이 영국군을 가장 먼저 몰아낸 도시라는 자부심도 이어졌다. 사우스보스턴 출신 닉 콜린스 주 상원의원은 “뉴욕은 영국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도시였다”며 특유의 농담을 던져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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