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오르가즘이 아니다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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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우리는 행복에 대한 오해를 한다.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강렬한 감정 상태를 떠올린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칭찬을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강렬한 즐거움’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자극, 더 큰 성공, 더 강한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의 결정이 아니다. 오르가즘이 순간적인 쾌락의 절정이라면, 행복은 삶 전체를 지탱하는 깊은 평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창조하지 않으셨다.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하셨다.
쾌락은 순간을 만족시키지만 행복은 존재를 만족시킨다. 하나님은 인간을 감정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삶에서 즐거움도 필요하다. 그러나 즐거움이 삶의 목적이 되면 문제가 시작된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누렸다. 부, 권력, 명예, 학문, 쾌락 등 모두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무엇인가. 전도서 1장 2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다. 왜인가? 쾌락은 영혼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배고픔은 음식으로 해결되지만, 영혼의 갈증은 하나님으로만 해결된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보신 문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였다.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 안에서 존재하신다. 인간도 관계적 존재이다. 그래서 돈이 많아도 외로우면 행복하지 않다. 성공해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하다.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다.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의미에서 온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양했다. 옥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자유로웠다. 왜인가? 삶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1장 21절을 보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사명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견딘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작은 어려움에도 무너진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셨다. 왜인가? 우리의 구원이라는 목적 때문이다. 행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문제를 통과한 이유를 아는 상태이다.
행복은 감사에서 자란다. 감사는 행복의 결과가 아니다. 행복의 원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행복하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왜냐하면 감사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받으면서도 불평했다. 다윗은 광야에서도 찬양했다. 환경은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의 태도가 달랐다. 감사는 영혼의 눈을 열어 준다.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행복이 완성된다. 세상은 행복을 성공, 재산, 건강, 쾌락에서 찾는다. 이 모든 것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얻는 기쁨도 영원하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시 16:11)라고 말이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하다. “내 기쁨을 너희 안에 두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행복은 오르가즘이 아니다. 행복은 강렬한 자극이 아니다. 행복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다.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다.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행복은 사명을 따라 걷는 삶이다. 행복은 감사로 살아가는 삶이다. 행복은 관계 안에 거하는 삶이다. 참된 행복은 ‘순간의 절정’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지속적인 평안’이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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