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실종 톤턴 참전용사, 7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18세에 포항 전투서 실종된 노먼 레베스크 상병
지난해 유해 신원 확인…14일 부모 곁에 군 예우로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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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8-04 23:57본문
한국전쟁 당시 18세의 나이로 실종됐던 매사추세츠 톤턴(Taunton, MA) 출신 미 육군 병사의 유해가 7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톤턴시에 따르면 미 육군 노먼 로널드 레베스크 상병의 유해가 5일 오후 주 경찰과 지역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톤턴으로 운구된다고 밝혔다.
운구 행렬은 베이 스트리트에서 브로드웨이와 워싱턴 스트리트를 거쳐 오키프-웨이드 퓨너럴 홈에 도착할 예정이다. 톤턴시는 행렬이 오후 4시에서 4시15분 사이 베이 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 일대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 당국은 성명을 통해 “엄숙한 행사이지만, 레베스크 상병이 복무와 희생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감사를 담아 마침내 고향으로 맞이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70여 년 만에 그는 자신의 고향에 안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주민들과 베테랑, 지역 기관, 시민단체에 레베스크 상병 유해의 귀환을 함께 환영해 줄것을 당부하고, 경의를 표하고자 하는 주민들은 4시부터 유해가 통과하는 도로변에서 줄지어 맞아달라고 안내했다.
퓨너럴 홈에 따르면 안장식은 8월 14일 금요일 정오 톤턴의 세인트 조지프 묘지에서 열린다. 레베스크 상병은 부모 곁에 군 장례 예우를 받고 안장될 예정이다.
레베스크 상병은 1932년 3월 20일 아먼드와 클라라 레베스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15야전포병대대 C포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C포대는 제9보병연대 제3대대와 함께 ‘브래들리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1950년 8월 10일 브래들리 태스크포스는 북한군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의 포항과 연일비행장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부대는 이날 포항과 비행장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부대 대부분은 자정 직전 연일비행장에 도착했지만, 8월 11일 새벽 북한군이 보병 1개 중대와 C포대 차량 4대를 기습 공격했다. 당시 18세였던 레베스크 상병은 이날 실종자로 보고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유엔군사령부와 북한, 중국인민지원군은 ‘글로리 작전(Operation Glory)’을 통해 전사자 유해를 교환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수사 기술로는 신원 미상의 유해 가운데 레베스크 상병의 유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는 1956년 하와이의 국립태평양기념묘지로 옮겨져 무명용사로 안장됐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DPAA)은 한국전쟁 유해 발굴계획에 따라 2018년 3월 26일 무명용사 유해 한 구를 발굴해 연구소로 보냈다. 유전자 검사와 인류학적 분석 등을 거친 결과 해당 유해는 레베스크 상병의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2025년 9월 8일 유해의 신원을 공식 확인했다.
레베스크 상병의 이름은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의 실종자 추모비와 워싱턴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벽에도 새겨져 있다.
생존했다면 올해 94세가 되는 레베스크 상병은 실종 76년 만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톤턴으로 돌아와 부모 곁에서 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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