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 사이에서 믿음은 어디에 서 있는가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10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우리는 지금 돈이 말을 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이건 기회다, 한 번에 인생이 바뀐다 등등 이런 말들이 믿음보다 더 크게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성경은 돈을 금하지 않지만,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는 묻는 것이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신앙을 책망하셨다. 얼마를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맡긴 것을 다루었느냐 이다. 하나님은 “왜 위험을 감수했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를 물으신다. 성경적 투자는 탐욕이 아니라 책임이다. 성경의 투자에는 시간, 노력, 기다림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에는 ‘한탕‘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투자는 소유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 있는 관리(청지기) 개념에 가깝다. 주인은 맡긴 것을 활용한 종들을 칭찬한다. 핵심은 위엄 감수가 아니라, 충성.책임.지혜에 있는 것이다. 목적은 주인의 기쁨이지, 자신의 과시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적 투자의 기준은 맡겨진 자원을 가치 있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노력.시간.인내가 동반되어야 한다. 결과보다 태도와 동기를 주인은 보신다.
성경이 경고하는 ‘투기’의 본질, 성경에서 문제 삼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태도이다. 디모데전서 6장 9절로 10절까지의 말씀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경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투기의 핵심은 빠른 부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노동.가치 창출 없는 요행을 바라는 것을 경계하며, 하나님보다 수익을 신뢰함을 경고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누가복음 12:15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미래를 물질로만 보장하려는 태도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을 잃어버린 태도를 지적하시는 것이다. 물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 없는 안전감은 바로 ‘우상숭배’를 말한다.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성경적 경계선의 동기는 투자는 맡김에 대한 책임에 있으며, 투기는 빠른 이익에 있다. 성경적 경계선의 시간은 투자는 인내와 기다림에 있으며, 투기는 조급함에 있다. 성경적 경계선의 수단은 투자는 지혜.노력.분별에 있으며, 투기는 운.정보.소문에 있다. 성경적 경계선의 태도는 투자는 하나님의 신뢰에 있으며, 투기는 돈.신뢰에 있다. 성경적 경계선의 결과는 투자는 ‘축복의 통로’이며, 투기는 종종 ‘중독과 파괴’에 있다.
성경이 경고하는 ‘투기’의 실체는 돈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문제라고 말이다. 투기는 종종 조급함, 비교,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신앙의 경계선은 투자는 하나님을 신뢰한 채 자원을 사용한다. 그러나 투기는 하나님 대신 수익을 신뢰한다. 투자는 잃어도 신앙이 무너지지 않는다. 투기는 잃으면 신앙이 흔들린다. ‘무엇을 믿고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