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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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7-30 12:40본문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오늘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만족은 더 줄어들었다. 더 좋은 집을 가져도, 더 높은 연봉을 받아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도 마음은 여전히 ‘조금만 더…’를 외친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만족은 배우는 것이다. 빌립보서 4장 11절을 보면,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처음부터 만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풍요도 경험했고, 감옥도 경험했고, 칭찬도, 핍박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나는 배웠다”라고 말이다. 만족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는 믿음이다. 감사는 만족을 낳고, 불평은 욕심을 낳는다. 불평은 욕심에서 시작되며, 그 욕심은 비교를 불러온다. 감사를 갉아먹는 것이 바로 비교이다. 비교는 만족의 가장 큰 적이다.
만족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무엇이든 성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견디고, 감사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양했다. 환경은 불행했지만, 영혼은 자유로웠다.
만족은 감사에서 자란다. 감사는 없는 것을 보는 눈이 아니라, 있는 은혜를 보는 눈이다.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평범한 하루도 기적으로 살아간다. 예수님만이 참된 만족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의 결혼으로도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세상이 주는 만족은 잠시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만족을 주신다.
만족은 비교를 멈출 때 시작된다. 비교는 기쁨을 빼앗지만, 감사는 만족을 키운다.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을 바라볼 때 평안이 찾아온다. 만족은 소유보다 존재에서 나온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나는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아는 사람은 환경이 흔들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만족은 욕심을 내려놓을 때 자란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작은 것에도 행복을 발견한다.
만족은 감사의 습관에서 자란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눈이다. 만족은 신뢰의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평안이 커진다.
만족은 인생이 완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서 자라는 평안이다.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 행복은 더 많이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은혜를 발견하는 데 있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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