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직선이 아닌 '선회로' 이다!!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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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6-29)
인생을 직선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늘 조급해진다. 출발 -> 성공 -> 완성. 막힘없이 곧게 나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선회로’이다. 돌고, 멈추고, 내려가고, 다시 오르며 때로는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길이다. 성경 속 인생은 언제나 “선회”였다. 아브라함은 약속까지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곧장 약속을 이루어 주지 않으셨다. 고향을 떠났지만,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갔고, 약속의 아들을 기다리다 인간적인 선택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다시 하나님의 시간표로 돌아오는 “선회”의 시간을 겪었다. 직선이었다면 실패이다. 그러나 선회로였기에 성숙이었다.
꿈에서 감옥으로 이어졌던 요셉의 인생은 하강 곡선처럼 보였다. 형들에게 팔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직선 논리라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굴곡이 애굽 총리로 가는 하나님의 큰 선회로였다. 직선은 빠르지만. 선회는 깊게 만든다. 다윗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왕이 되기 전의 광야를 돌던 때를 생각해 보라. 기름부음은 받았지만, 왕위는 곧바로 주어지지 않았다. 사울을 피해 도망하며 광야를 돌고 또 돌았다.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왕의 심장”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즉 영혼의 궤도를 다듬는 선회였던 것이다.
자연도 직선으로 자라지 않는다. 나무는 원을 그리며 나이테를 만든다. 독수리는 상승기류를 타기 위해 선회한다. 행성은 궤도를 따라 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직선이 아니라 궤도(orbit)로 움직인다. 멈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질서 속에서 전진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는 선회하게 하시는가. 첫째 방향을 재조정하기 위해서이다. 직선은 수정이 어렵다. 그러나 선회는 방향을 바꿀 기회를 준다. 둘째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이다. 너무 빠르면 따라오지 못한다. 셋째 더 높은 곳으로 올리기 위해서이다. 비행기는 곧장 상승하지 않는다. 선회하며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길에서 선회로에 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은 “왜, 제자리인가?”, “왜, 다시 여기인가?”, “나는 실패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말씀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은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곡선이 모여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선회로 신앙의 세 가지 태도는 첫째,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직선처럼 보이는 타인의 삶은 보이지 않는 굴곡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둘째, 멈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준비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궤도를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작은 점 점선을 보지만, 하나님은 궤도를 보신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의 선회는 무엇인가. “반복되는 문제?”, “다시 찾아온 시험?”, “오래 기다리는 기도 제목?”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더 높은 궤도로 옮기기 위한 선회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그러나 무질서도 아니다. 선회는 하나님의 정밀한 항로 수정이다. 직선은 빠를 수 있지만, 선회는 깊은 것이다. 그리고 깊은 사람만이 높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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