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연재] 트레이더 조와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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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une Lee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트레이더 조에 미니 토트백 많이 있어요.” 소파 위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뒤이어 키 큰 선반 에 켜켜이 쌓여있는 가방 사진 한 장이 스마트폰 화면을 밝힌다. 올여름 한국에 들어갈 예정인 사람들이 가져갈 선물로 파스텔톤 줄무늬 가방이 요긴한 모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으로 떠날 때 무엇을 챙겨가는지 알게 되자 나도 곧 한여름을 나고도 남을 옷가지와 갖은 생활용품을 밤새 싸야 할 것만 같다. 이미 공항에 도착한 것처럼도 느낀다. 엄마한테 전화나 해볼까 싶지만 한국은 깜깜하게 이른 새벽. 오래전 떠나온 집과 사람에게로 다시 향하는 이들의 카톡을 읽으며 여권이 든 책상 서랍을 잠깐 열어볼 뿐이다.
미니백은 한 사람당 한 번에 여덟 개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거 주고 싶은 사람한테 나눠줘’ 란 말을 얹어 선물의 미래까지 함께 선물하려면 여덟 개로는 모자라 보였다.
실컷 늦잠을 잔 방학 첫날 오후, 염색약을 사러 가자는 딸을 차에 태워 나갔다. 날로 울창해지는 가로수 그늘 아래 제한 속도를 지키며 트레이더 조 가방을 최대한 많이 사들이는 방법을 같이 궁리해보았다. 온 가족이 트레이더 조로 출동해 가방을 집어 들고 한 사람씩 따로 계산한다. 결제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가 도로 들어와 가방을 더 산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적은 계산대가 조금 전 이용한 계산대와 같은 데는 아닌지 살핀다.
나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이 수고를 반복한다. 가게 출입구를 들락날락거릴수록 한 사람은 두 사람, 세 사람이 된다. 한국으로 가져갈 가방 속 가방이 하나 둘 불어난다.
화장실 거울 속에는 검붉은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딸이 있다. 거울 너머 서로와 가끔 눈을 마주치며 얼마 남지 않은 염색약을 마저 머리칼에 칠한다. 맨 처음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아이는 거의 민머리였다. 그 뒤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국에 가지 못했다. 누구나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고도 남을 세월이 두 나라 사이를 속절없이 흘렀다. 그 사이 나의 미래는 이 자리에 깊이 뿌리내렸다.
올해 여름 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가진 사람의 수많은 미니백 중 하나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두 손에 선물로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이유로든 일상에 발 묶이지 않은 채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는 가방 하나. 그렇게 남의 손에 이끌려 비행기를 타고 내릴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안엔 Trader Joe's가 겉면에 선명한 다크 초콜릿 몇 개가 들어있을 것이다.
답례는 필요 없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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