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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연재] 치통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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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6-05-2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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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출장 가는 남편을 배웅한 뒤 다시 침대 위에 눕자 오른쪽 앞니로 통증이 날벼락 친다. 이미 겪어본 적 있는 아픔이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훤하다. 누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 거울 앞에 선다. 입모양을 이로 만든다. 오른손 검지를 앞니에 갖다 대본다. 치아 전체에 퍼져있던 통증이 그 자리로 날카롭게 한데 모인다. 이렇게 맥박과 함께 욱신대는 앞니는 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만으로 달랠 수 없다. 


거실 소파에 누워 치과로 전화를 건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전화를 끊자마자 버추얼 어시스턴트에게서 뭘 도와드리냐고 문자가 온다. 스마트폰 화면 위 문자를 치우고 통화 버튼을 다시 누른다. 여전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결국 버추얼 어시스턴트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로 인해 치과 진료 접수 담당자의 업무량이 얼마간 덜어졌기를 바라며 문자로 진료 시간을 예약했다. 


일반 치과 의사는 의료용 의자에 누운 나와 모니터 속 엑스레이 사진을 번갈아보면서 내 앞니는 충치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내게 자면서 이를 갈거나 평소 이를 앙다무는 습관이 있을 거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는 드라이아이스 같이 차가운 솜을 내 멀쩡한 앞니에 한 번 아픈 앞니에 한 번 갖다 대는 냉온시험을 실행했다. 솜이 왼쪽 앞니에 닿는 순간 목구멍에서 곧장 윽소리가 튀어나왔다. 오른쪽 앞니는 오랫동안 전혀 시리지 않아 나와 의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와중에도 오른쪽 앞니는 계속해서 욱신거렸다. 결국 지금 이 문제를 해결 못할 치과 의사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영문 모를 아픔에 시달리는 치아는 신경질적인 사람을 환영한다. 


치과 진료 접수 담당자는 신경 치료 전문 치과에 손수 전화를 걸어 내가 그날 저녁 당장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처음부터 전화기 너머 다른 접수 담당자가 당일 진료는 불가능하다고 나왔는지 환자가 아파서 운다는 농담과 Sorry를 But으로 받아치는 집요함으로 그는 나를 구원했다. 이런 식의 일정 조율과 협상은 버추얼 어시스턴트와의 문자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로만 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나는 버추얼 어시스턴트와 진료를 예약해 당일 진료를 받지 못하고 하루 기다렸다 치과에 온 거였기 때문이다.


신경 치료 전문 의사 역시 내게 냉온시험을 실시했다. 이를 가는 것과 앙다무는 것이 초래하는 치아 마모, 균열에 대한 얘기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360도 엑스레이 검사 결과 앞니 뿌리 끝에 아주 작은 염증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 명확한 증거 앞에서 나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된 버릇을, 옷소매를 물거나 입술을 꽉 깨문 채 책 읽는 그 버릇을 입가에 떠올린다. 독서의 신체 감각화. 그로 인해 의료용 의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누워 내 머리맡에 앉은 의사 쪽으로 눈물을 떨구며 신경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마취된 잇몸 위로 펼쳐지는 기계 진동, 소음과 이물감이 버거워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보다 못한 의사가 손을 멈춰 세우고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괜찮다고 대답했다. 진료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가 내 눈물을 무시하고 신경치료에 전념하길 결심했는지 또다시 악랄하게 작동하는 드릴. 모름지기 신경 치료 전문 치과 의사의 미덕은 공감이나 연민 아닌 신속하고 정확한 손놀림이라고 입 벌리고 울면서 생각했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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