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연재] 정원과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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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7-30 12:36본문
7월 초 여름휴가를 떠날 이웃집 정원에 일주일 동안 윤새가 물을 주기로 했다. 이건 얼마간의 수고비가 약속된 엄연한 써머잡이다. 화요일 해 질 녘 찾아간 이웃집에서 소년은 내 몸 뒤에 반쯤 숨은 채로 집주인과 인사를 나눴다. 그의 물 주기 시범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윤새는 수도꼭지 위치와 작동법, 사용하기 알맞은 호스 길이와 호스 정리 방법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익혔다. 집에서는 결코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한참 정원에 물을 주던 집주인이 윤새에게 다가와 “쉽지? 이제 네가 한 번 해봐”라고 말하면서 호스를 아이 손에 넘겨주었다. 이로써 수국과 이름 모를 여러 꽃이 알록달록한 화단, 깻잎과 줄콩, 토마토가 무성한 텃밭의 안위는 오롯이 열 살 소년의 몫이 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면 그 열기로 몸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나날이 이어졌다. 차문을 열자마자 차 안에서 무더위로 끓고 있던 공기가 우리 얼굴을 강타해 악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순간도 잦았다. 내리쬐는 햇살에 꽃잎은 빛깔이 사위어가고 깻잎은 땅에 닿을 듯 말 듯 축 쳐졌다. 소년은 저녁마다 불 끄러 온 사람처럼 부리나케 차문을 열고 뛰어내려 수도꼭지를 돌렸다.
이웃집 정원의 식물은 매일 눈에 띄게 잎을 불리고 꽃을 피우며 키도 컸다. 한밤중에 정원을 찾아와 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꽃피는 소리, 잎사귀 돋는 소리, 줄기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스를 든 윤새는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토끼와 나무 밑에 숨어 있다 튀어 오르는 개구리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식물의 변화를 살폈다.
윤새를 이웃집 정원에 데려다주고 물 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돌아오는 저녁, 나는 평소처럼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 집 정원을 서성이며 둘러보다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았다. 정원은 식물이 변해가는 모양과 색깔로 아무 말 없이 사람을 주저앉히고 마침내 손을 쓰게 한다. 나는 그 조용한 요구를 모르는 척하기 쉬운 우리 집 빈 정원이 편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윤새는 “우리 정원 잘 돌봐줘서 고마워"라 적힌 흰 봉투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잡초 뽑기도 그쳤다. 그러니까 내일도 그다음 날도 우리 집 정원이 말없이 보여주는 생의 변화에 눈길로만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나에게 '민들레야 한 번 짖어보렴. 그러면 네 키가 내 무릎까지 닿기 전에 뽑아줄 수 있어.'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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