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연재] 양궁과 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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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8-31 13:20본문
온 가족이 하던 얘길 멈추고 옛 공장 건물 내 실내 양궁장 문을 밀고 들어섰다. 처음 가보는 그곳에는 수강자 리스트를 든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궁 수업은 우리가 주로 쓰는 눈이 어느 쪽인지 알아내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양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세모를 만들었다. 앞으로 두 팔을 쭉 뻗어 과녁을 보았다. 우리 넷의 세모는 모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선생님에게 안전 교육을 받고, 활 잡는 법, 화살 끼우는 법, 활 쏘는 자세를 배운 뒤 과녁 앞에 섰다. 우리는 올림픽 양궁 경기 중계에서 본 대로 입술을 꽉 다물고 거의 동시에 활시위를 당겼다 놨다. 과녁은 침묵했다.
여름 방학 동안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길 바랐다. 야구, 농구, 배구, 피클볼, 테니스 등 여러 운동 종목이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 아이들은 운동만을 선택지로 내미는 나와 남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이 무언가 새로 배워야 한다면 그건 운동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마흔 넘어 토마토소스 뚜껑도 한 번에 못 여는 우리의 일상적 불안을 아이들이 땀 흘려 잠재워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공지능에는 아직 그에 걸맞은 인공 신체가 없으니까 우리가 아이들의 신체 능력을 미래 경쟁력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하지만 아이들은 뛰어다니는 운동은 싫다고 버텼다.
거실 소파에 누워 속으로 ‘아니, 그렇게 뛰는 게 싫으면 어디 한 번 계속 서 있어 봐.’ 생각하며 양궁 얘길 꺼냈더니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스마트폰으로 양궁장 웹사이트에 아이들 인적사항을 입력하다가 나와 남편까지 함께 등록했다.
다시 오른손 손가락 세 개로 활시위를 당긴 채 온몸을 정지했다. 팔꿈치를 몸 뒤로 살짝 당기며 손가락을 폈다. 피융. 활을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혔다. 퍽. 양궁은 소리로 운동한다. 나는 바닥에 칠해진 파란 선 뒤로 물러나 조용히 발을 굴렀다. 우리는 선생님이 주는 신호에 맞춰 화살을 뽑으러 과녁 앞으로 걸어갔다. 허리춤에 찬 화살집에 화살을 집어넣고 과녁에 난 구멍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두 시간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양궁장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종종 들으며 마침내 우리는 명중에 가까운 각자의 한 발을 쏘았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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