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연재] 시절 인연과 유방암 검진 > 뉴스 보스톤코리아
본문 바로가기


[인류연재] 시절 인연과 유방암 검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

본문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20년 전 처음 만난 친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게 할 스팸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미안하지만 혹시 지금 통화가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점점이 수놓은 그 어느 문장에서도 내게 돈을 꾸거나 보험을 팔려는 의도를 읽을 순 없었다. 하물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친구와 대화할 의지가 있었다. 왜냐하면 기나긴 시간 인스타그램 팔로워 리스트의 아이디로만 존재하던 그를 실제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보세요”, 로 시작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얘길 나눈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말이 거듭 이어졌다. 잠시 머뭇대는 기척뒤에 친구는 내 리을 발음이 예전과 다르다 지적하며 웃었다. 해 질 녘 일요일 지하실을 훤히 밝히는 애정이 거기 있었다.


같은 대학을 나온 지인의 옛 연인이 얼마 전 뒤늦게 발견한 유방암으로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죽었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보다 몇 살 어린 후배의 때 이른 장례식을 목도한 뒤 유한한 생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진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다 멀리 사는 내가 어느 날 느닷없이 죽으면 자신에게 그 소식이 제때 전해질런지 알 수 없어 이렇게 따로 연락해 보기에 이르렀다 고백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나의 죽음을 포스팅하지 마라’, 장군처럼 유언하지는 않을 텐데. 그의 여전한 순진무구와 낭만을 짓궂게 되받아칠 수도 있었지만 고맙다 인사하고 그만 생로병사에 관한 통화를 마쳤다. 깜깜한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계단을 오르는 내 마음은 온통 '그래, 그러면 우선 유방암 검진부터 받아야겠지. ' 비장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인류연재] 치통과 독서

그렇지 않아도 마흔을 넘어선 내가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자리는 매모그램 기계 앞. 나지막한 기계음이 음악처럼 흐르는 공간에서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여성 촬영 기사가 줄줄 읊는 안내 사항을 흘려듣는다. 빛바랜 보라색 환자 가운 앞끈을 풀어헤친다. 레고로 조립해 각으로만 빚어진 사람 품에 안기듯 상체만 기계에 바짝 다가선다. 전문가의 손길에 나를 맡긴다. 이 자리에 선 순간부터 타인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터가 된 내 신체 일부가 아파온다. 그러나 태연하게 고통을 음미하며 정면만을 응시한다. 마치 아무리 쥐어짜도 터지지 않는 한 쌍의 거대 여드름이 문제인 나를 모델로 촬영은 별 탈없이 마무리된다. 가운을 고쳐 입는 사이 나이 들수록 타인 손에 맨몸을 맡길 일이 점차 잦아질 거란 확신에 사로 잡힌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할 때마다 느낄 충격과 수치와 함께 가능한 한 오래 건강해야 하다니. 또다시 서로 무심해져 버리기 전에 친구한테 검진 결과를 스팸 메시지처럼 써서 보내 보고 싶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J
June Lee 칼럼니스트
June Lee(이혜준)는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로 '인류연재'를 연재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보스턴 필수 생활 뉴스를 받아보세요

매주, 보스톤코리아 생활밀착 뉴스를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관련기사

애나정
에이 클래스
크리스 최
스마트 덴탈
모스이민컨설팅
성기주변호사 뉴스
제이슨전 뉴스

불편신고